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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70% vs 7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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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이시다 미쓰오(石田光男) 교수가 기자와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파안대소했다. “한국은 최근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려 노사정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다. 호탕하게 웃으며 그는 “다 끝났는데 노조가 양보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일본은 어떤 고용정책이든 70% 이상 현장에 보급되지 않으면 법제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정년연장을 논의하고 30년 이상 준비해 시행했다. 60세 정년이 의무화될 당시(98년) 정년 60세를 채택하고 있던 기업은 93%였다. 그는 임금과 인사제도에 관한 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한국 상황을 꿰고 있는 그의 진단에 우리 정부는 뭐라고 얘기할까.

 그런데 이런 얘기는 일본에서만 들은 게 아니다. 지난해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네덜란드 사회과학연구소(SCP)의 폴테하이스 수석연구위원은 “시간제 근로자가 70%에 육박해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96년 마련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선 50년대 제과회사가 시간제 근로자를 처음 채용했다. 이후 40여 년 동안 시간제 근로자는 계속 늘었다. 이들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96년에야 제정됐다. 당시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68%를 넘었고, 99년엔 70.8%였다.

 두 나라 모두 고용시장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 때 70%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보편화되지 않으면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1년 말 현재 60세 정년을 시행하는 기업은 23.3%(300인 이상)에 불과하다. 정년연장법뿐이 아니다. 시간제 근로자나 육아휴직 확대, 근로시간 단축 같은 법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고용 관련 법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일본이나 네덜란드와 달리 시장상황 70%가 기준이 아니라 정책 목표 70%가 기준이다. 고용정책이 나올 때마다 기업들이 아우성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후지쓰의 이타쿠라 가즈토시(板倉和壽) 노조위원장은 정부 정책과 시장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일본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하란다고 노사가 따라가지 않는다.” 최근 일본 정부가 소비활성화를 위해 임금을 인상토록 기업을 압박하는 데 대한 답이었다. 정부의 독주보다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다. 한국에선 왜 이 말이 통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김기찬 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