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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기차 시간이 살인 사건을 미궁에 빠뜨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신영
역사에세이 작가

“그런데 뜻밖에 기차가 눈 속에 파묻히게 돼 승객들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몹시 당황했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재빨리 의논을 하고,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승객들 모두가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두 번째 시간이다. 위의 말은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는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했다.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각각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수 있었다. 예상 못 했던 폭설로 기차가 멈추지만 않았더라면. 범인들은 미리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운행 시간표를 살펴서 절대 자신들이 의심 받지 않도록 알리바이를 짜 놓았다. 이렇게 철도 미스터리 소설에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기차 배차 시간표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기본 동력은 석탄이었다. 기차를 만들게 된 것도 석탄을 빠르게 대량으로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곧 여행을 위한 용도로도 기차가 사용됐다. 초기에는 차표가 비싸서 주로 상류 계급이 기차를 이용했지만, 점차 철도망이 확대되고 철도 회사들이 많이 설립돼 가격이 인하됨에 따라 기차를 이용한 철도 여행은 대중화됐다. 이렇게 철도가 대중화되면서 기차 역이 있는 각각 다른 지역의 시간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국내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를 연결하고, 광대한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가 생기면서 철도 회사들은 각각 다른 지역과 국가의 시간대 때문에 기차 시간표를 조정하는 데 곤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철도 회사들은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맞춘 시간, 철도시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일러스트=홍주연

철도 등장 전까지의 여행이란 스스로 걷거나 말·마차를 타고 하는 것이었다. 먼 지역까지 가더라도 지역마다 다른 시차를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오면 그때가 정오였으며, 정오를 기준으로 하루의 시간을 맞췄다. 자신이 있는 지역의 시간에 맞춰 살고 여행하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먼 지역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철도가 대중화됨에 따라 다른 지역의 각각 다른 시간대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철도 회사가 기준으로 정한 시간에 맞춘 표준시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같은 철도 노선이 지나가는 도시들은 같은 철도시에 시간을 맞췄다. 그래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의 중앙 철도역에 가 보면 꼭 광장에 시계탑이 있다. 그래도 여러 노선의 철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나 대도시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브라질의 가장 큰 도시인 상파울루 시의 기차역에는 각각 다른 도시에서 오는 기차들에 맞춰 시계가 세 개나 있었다니 말이다. 이제는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표준시가 필요했다.

철도를 처음 만든 영국은 세계 최초로 표준 철도시를 만들었다. 1824년 그리니치 시간에 맞춘 표준시가 정해진 것이다. 반면 영국보다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의 경우, 1870년에 있던 철도시는 80개나 되었다. 지금처럼 미대륙 전역을 네 개의 시간대로 나눈 표준시는 1918년에야 법으로 정해진다.

바로 이 점에서 영국에 철도 미스터리 작가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를 또 알 수 있다. 철도가 발달한 영국은 일찍부터 철도시를 확립한 후 다른 나라들보다 정확한 배차 시간표를 갖고 기차를 운행했다. 덕분에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들은 정확히 시간을 계산해 등장 인물들의 범죄와 알리바이를 구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이어 수준 높은 철도 미스터리 소설이 많이 창작되는 나라는 철도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데 유명한 일본이다.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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