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옥의 주점에 「옛 한국」재현 학사 주점 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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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래 젊은이들 사이에는 고유한 우리의 것을 찾아 즐기려는 주체적 문학에의 갈구와 국악·민속 등의 전통문화를 현장화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흔히「학사 주점 촌」이라 불리는 종로·서린동 일대의 젊은이를 상대로 하는 술집들의「원두막」「오두막」「양산박」「표주박」「항아리」등의 옥호나 대학가 젊음의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탈춤·연날리기·제기차기·윷놀이·널뛰기 등의 민속놀이에서 젊은 세대들의 취향과 주체적 자각현상을 잘 엿볼 수 있다.
서린동에는 막걸리를 주로 파는 39개의 「학사주점」이 있다. 주점 옥호는 하나같이「청포도」「보리밭」「정선 달」「산촌」「남포 집」「군학 집」「서산 촌」같은 순수한 한국적인 것들이다. 외부 건물도 낡은 한식기와의 고옥이지만, 내부장식이나 시설도 「한국의 옛날」을 현장화한 것들이다.「홀」바닥은 비싼 양탄자 대신 우리의 고유한 멍석이나 왕골 자리를 깔았고 조명도 휘황한 환한 조명과는 거리가 먼 종이 등이다.
이들 술집 고객은 80%가 대학생을 중심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즐겨 찾는 술은 압도적으로 막걸리와 소주 안주도 한국적인 파전·두부 탕 등이 단연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학사주점을 찾는 젊은이들은 술값도 극히 한국인으로서의 그 경제적 분수를 지킨다. 친구나 선후배관계의 젊은이들 3, 4명씩 들어와 먹는 한 「테이블」의 술값은 대부분 5백원∼7백원 정도이며 2천 원을 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때로는 이들 젊은이들은 술값을 올리지 않기 위해 막걸리에 소주를 타서 마시기도 한다는 것.
「고고」무대나 「사이키델릭」음악이 없는 학사주점의 주객들은 소주를 탄 막걸리에 젊은 울분과 현실비관 등을 용해시키며 조용히 내 것을 되새긴다. 그래서 이 같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어느 술집은 아예 국악만을 음반이나 생 음성으로 들려준다.
대부분의 술집이 「캄보·밴드」와 「아마추어」가수들을 등장시켜 「팝」과 「포크」, 그룹·사운드」를 했지만 지난 11일부터는 악단 연주를 지역환경정화위원회 결의에 따라 일체 중지한 채 DJ들이 주로 희망 곡을 받아 음반을 틀어준다. 물론 술과 음악이 불가분한 것이긴 하지만 이 주막집들의 음악은 술에 못지 않게 젊음의 발산을 달래준다.
그래서 이들 막걸리 집은 최근 젊은 남녀들의「뮤직·데이트」장소로서 각광(?)을 받고있기도 하다. 『다방에서 우유를 마시는 값이면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우리 젊은이의 광장』이라고 말하는 한 대학생은 술집 벽 선전지에 쓰인 학사주점 촌의 유행어 『엽세요-』를 가르치면서 훌륭한「데이트」장소임을 역설했다. 물론 서린동 학사주점들 중 국악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은 아직 하나밖에 없지만 전세다방에서 「고고」와 「포크」음악에 광분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날뛰는 오늘의 현실」에 하나의 서광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로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이런 술집은 서린동 일대 외에도 대학가나 다동·관철동 등에도 몇 집씩 있다. 흔히 생맥주 「고고」등의 서구적인 흉내나 맹종만을 일삼는다는 부정적인 젊은 세대 관이 판을 치는 가운데에도 이같이 내 것을 찾아 즐기는 긍정적인 젊은이들의 전통의식이 허름한 술집골목 안에서 생동하고 있다.
대학가 젊의 제전에 각종 민속극과 민속놀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초년9월 60개 대학 3백50명의 학생이 대거 참여했던 제1회 대학 문예축전에서의 국악·무용·연극·민속놀이로 나누어진 민속예술제가 하나의 전기였다.
그래서 최근 젊은이의 축제에는 이 같은 민속놀이들이 으례 끼여들고, 이제 그것은 모든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72년부터는 민속예술연구회(서울대) 탈춤연구회(연세대)민속극연구회(이화여대) 등이 축제 항쟁과는 별도로 학생 「서클」로 등장,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 민속놀이는 대학축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돼버렸다.
또 처음에는 밖의 기능보유자가 공연하는 것을 관람했지만 이제는 대학생 자신들이 연기자가 돼 가냘픈 여대생의 몸매를 빌어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가 재현되는 등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있다.
어떻든 각종 민속놀이가 젊은이들의 축제에서 각광을 받으며 확산돼 가고 있고 최근 학사주점 촌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멋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우기 이들 젊은이들은 국수적인 오만이 없이 술값을「더치·트리트」식으로 각기 분담하고 남녀술집「데이트」를 자연스럽게 즐길 뿐 아니라, 김세환 군을 비롯한 몇몇 대학생가수들은 국악을 「팝송」화해 국악의 현대학을 시도해 보는 등 서양적인 것을 우리의 것에 맞추어 잘 소화하려한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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