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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김시오씨 유러시아 철도 횡단기(본지 독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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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차가「울란바토르」에 도착한 것은 아침9시쯤이었다. 햇볕이 모닥불같이 붉어 마치「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일주일간의 기차 안 생활이 지긋지긋하고 또 거센 바람에 차체가 흔들려 잠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감기기운이 있어 「아스피린」과 「비타민」제를 듬뿍 먹고 이곳에서 하루를 쉬어가기로 했다.
특히 몽고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14세기 초원의 영웅「징기스칸」이 아직도 나에게 이상한 흥미를 자극시켰기 때문에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실컷 몽고구경을 하고 싶었다.

<의정부 만한 몽고수도>
1955년 중공과 소련을 연결하며 몽고를 관통하는 「시베리아」간선철도가 개통되고 난 후부터 수도 「울란바토르」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고 말하나 아직도 내 눈에는 의정부 만한 작은 도시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의 중심가에 극장·대학·「호텔」등 석조건물이 서 있는 것 외에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유목민 특유의 천막집「파오」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고가 전체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주민의 50% 이상이 목축을 버리고 공장 등 생산업체에서 얼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는「호텔」에서 소개한 통역을 데리고 석유「콤비나트」를 방문했다. 몽고는 격심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있어 상당수의 여자가 남자와 함께 공장 일을 했다.

<다산엔 연금과 훈장>
한 직공의 말에 의하면 몽고정부는 시급한 인구증가를 위해 다산을 국가시책으로 장려하고 있는데 5명 이상의 자녀를 둔 부인에게는 연금과 훈장을 주며 8명 이상인 부인에게는 모성영웅」이란 칭호를 수여한다고 했다.
따라서 적령기가 되어도 결혼을 않거나 결혼은 했어도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는 월급의25%를 벌과금으로 징수한다고 한다. 이같이 몽고인구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믿어온「라마」교가 결혼을 부결시한데 있었으며, 또 청조 말에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던 몽고성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목과 원시적 농업·종교에의 맹신·비위생·높은 문맹률·악성매독 등은 새로운 사회건설과정에서 착착 청산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나는「호텔」에서 위장병과 폐병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진 몽고특유의 음료 마유주(아이라그)를 마셔보았다. 「요쿠르트」의 맛과 비슷했다. 놀라운 것은 중공이나 소련에 비해 여자들의 의상이 화려하고 화장이 짙은 것이었는데 강한 직사일광 때문에 가무잡잡한 피부에 원색의 몽고 복을 입은 여인들의 매력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거리엔 동구제 자동차>
거리에는 말과 낙타가 옛날처럼 짐을 싣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으나 소련제와「체코」제의「버스」·자동차도 꽤 많이 눈에 띄고 자전거와「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소 원기를 회복한 나는 이튿날 별다른 복잡한 절차를 밟지 않고 이미 끊은 차표로「울란바토르」에서 북경까지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해발1천2백 「피트」의 고원과 「고비」사막을 지나게 된다.
「고비」는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순전한 사막만은 아니었다. 비록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풀이 자라고있어 방목이 가능해 지평선 위에는 풀을 뜯어먹는 양떼들이 흰 점박이로 보였다.
또 중간중간 낙타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기복이 많은 초원 위에 나타나 마치 서부극의 배경을 연상케 했다. 그 규모의 광활함에 있어「애리조나」사막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소련서 왜 왔나" 경계>
기차는 차차 중공과의 국경에 가까워 왔다. 여기서도 무서운 눈바람이 차창을 심하게 두들겼는데 눈바람이 몰아치는 그 저편엔 둥근 해가 떠올라 자연의 조화와 심술궂음을 또 한번 절감했다.
중공 땅에 들어가기 직전 기차가 멎자 밖에서 중공경찰이 올라와 기차간 양쪽입구를 막고 승객들의「패스포드」를 검사했다. 몽고경찰로부터 인계를 받은 중공경찰은「모스크바」에서부터 타고 온 승객들의「패스포드」를 모두 거두어 갔다.
나는 신문지상에서「중·소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은 있으나 중공과 소련이 이토록 사이가 나쁜지는 미처 몰랐다.
검은 옷에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중공경찰은 나에게 어째서 소련으로부터 왔는지를 샅샅이 캐묻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좀체「패스포드」를 돌려줄 것 같지 않은 태도를 취했다.

<사진제시로 누그러져>
다급한 나머지 나는 지난번 광동 교역회에 참석했을 때에 중공관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놓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실례했다는 인사를 했다.
여기서의 검문에 무려 3시간을 소비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창 밖은 칠흑으로 변했다.
다음날 새벽 눈을 떴을 때 기차는 북경에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알았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 틈에 만리장성이 희끗희끗 보이고 들판과 길에 사람의 수가 많아졌다. 그제서야 나는『크다의 나라』소련에서 『많다의 나라』중공에 온 것을 알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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