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조원 투자한 소치 "32조원은 행방 묘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러시아가 소치 겨울올림픽에 투자한 돈은 얼마일까?”

 미국의 정보분석 업체인 ‘렉시스넥시스’가 최근 소치 관련 언론보도 내용을 분석한 것에 따르면 500억 달러(약 53조2700억원)라는 답이 나온다. 역대 여름·겨울올림픽을 통틀어 사상 최대 규모다. 소치 올림픽 이전 최대였던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425억 달러)에 비해서도 75억 달러 정도 더 많다. 강한 러시아를 보여주기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대통령의 통 큰 투자였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러시아 안팎에선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소치 올림픽 투자 규모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며 “실제로 투입된 금액은 당초 러시아 정부의 발표보다 훨씬 적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드미트리 코작 러시아 부총리는 “1조5000억 루블을 소치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 규모만 공개했을 뿐 자세한 사용 내역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당시 환율로 따지면 러시아의 투자 규모는 500억 달러다. 이후 코작 부총리는 “경기장 등 올림픽 시설 건설에 67억 달러, 철도와 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에 167억 달러를 쓸 계획”이라며 일부 투자 내역을 공개했다. 투자 액수와 관련된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러시아 정부는 “올림픽 후원사들과 러시아 기업들의 투자를 모두 합하면 500억 달러가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포뮬러 원 자동차경주장 건설비 3억5000만 달러 등 이번 올림픽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업 비용도 500억 달러에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달 말 “철도와 도로 건설비를 2850억 루블로 계산했는데 외국 사례와 비교하면 1.9배 가까이 과다 책정됐다”며 검은 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는 “거대 재벌들이 푸틴 정부에 뒷돈을 대주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올림픽 건설비에 슬쩍 끼워 넣었다”며 “올림픽 예산 500억 달러 중 300억 달러가량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최대 공적 중 하나로 삼으려 했던 소치 올림픽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그를 공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 정부가 정확한 투자 규모와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한 ‘500억 달러’ 공방은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