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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20년 만에 즐겼습니다" 이규혁 해피엔딩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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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피드 스케이팅 한국 대표팀 선수들 체격은 다들 비슷하다. 같은 경기복을 입고 스케이팅을 하면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규혁(36·서울시청·사진)은 스트로크(발로 얼음을 지치는 동작)하는 장면을 멀리서만 봐도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사력을 다한 몸부림. 그의 동작은 크고 거칠다. 이규혁은 초반부터 폭발하는 스타일이다. 레이스 후반 힘이 떨어지더라도 죽어라 달린다.

 이규혁이 12일(한국시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남자 1000m에서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열여섯 살 중학생 때 1994 릴레함메르 올림픽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2014 소치 대회까지 개근했다.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마지막 레이스도 이규혁다웠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쥐어짜는 주법. 이규혁은 초반부터 이를 악물고 레이스를 펼쳤다. 이규혁은 1분10초04로 레이스를 마쳤다.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규혁은 “ 지금까지 즐기지 못했던 올림픽을 즐긴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가노 대회부터 밴쿠버까지 그는 항상 금메달 후보였다. 이규혁은 1997년 1000m, 2001년 1500m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네 번, 월드컵 대회에서 16번 우승했다. 그가 달리는 길이 대한민국 빙속의 역사였다. 세계 정상에 선 이규혁을 동경하며 이상화와 모태범이 자라났다. 이들은 ‘이규혁 키즈’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규혁은 올림픽과는 20년 동안 전쟁을 했다. 유일하게 갖지 못한 단 하나가 너무나 큰 부담이 됐다. 토리노 대회에서 1000m 4위를 한 것이 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

 밴쿠버 대회 직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규혁은 자신 있게 밴쿠버로 향했다. 막상 경기일에는 몸이 무거웠고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가 상위권에도 들지 못할 때 11년 후배 모태범이 한국의 남자 빙속 첫 금메달을 따냈다. 이규혁은 1000m 레이스를 끝낸 뒤 빙판에 드러누워 회한을 식혔다. 힘겹게 일어난 그는 “(컨디션이 나빠) 안 되는 걸 알면서 도전하는 게 너무 슬펐다”며 울었다.

 끝난 줄 알았던 이규혁은 다시 일어났다. 어린 후배들과 경쟁해 당당하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규혁은 “소치에 와 보니 이전과는 올림픽이 달리 보인다. 지금까지 난 반쪽 올림픽만 본 것 같다”며 웃었다. 이규혁은 메달 대신 감동을 전했다. 그가 진정한 올림피언이다.

소치=김식 기자

여섯 번째 도전 끝낸 빙속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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