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준법경영으로 '오너 리스크' 고리 끊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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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기업 총수의 범죄에 대한 법적 잣대가 엄격해지고 있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중요한 것은 대기업 회장이란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아서도, 과도한 처벌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제 서울고법 형사5부는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로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기업어음(CP) 사기 발행 혐의로 기소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 대해서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 “재벌 회장에 대한 정찰제 판결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2년 8월 김 회장 법정구속 이후 이어져 온 ‘재벌 엄벌주의’ 흐름에 변화 조짐을 보인 것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간 법원이 대기업 총수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고 양형(量刑·형량 결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기업 수사에 배임죄가 활용됨으로써 ‘모든 기업인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점에서 서울고법 재판부가 “개인 치부를 위해 회사 자산을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 거리가 있다”거나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참작했다”고 밝힌 것은 재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은 사안별로 유·무죄를 판단하고 개개인의 형사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는 곳이다. 기업인이 주식회사를 자기 소유로 착각하고 회사 돈을 개인적 용도에 쓴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서울고법 재판부가 김 회장 판결문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법질서와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투명하고 정상적으로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번 집행유예 판결이 ‘재벌 봐주기’의 시발점이 되거나 그렇게 오해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제 준법경영 시스템 구축은 기업 경영의 기본이다. 준법경영이 확고히 자리 잡지 않는 한 ‘오너 리스크’란 이름의 한국적 퇴행현상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