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풀릴 전화기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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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체신부는 전화계약의 만성적인 적체를 완화하기 위해 내년도에 19만8천대의 시내전화를 증설키로 했다. 그러나 이로써도 전화사정이 크게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좀 더 획기적인 전화정책의 전환이 요망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첫째 의문은 체신부가 예산상 확보한 내년도 전화시설비 4백6억원의 재원을 가지고서 과연 19만8천대 밖에는 전화를 더 늘릴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 둘째로는 지난 9월l일부터 실시한 요금 인상에 따라 증수될 2백80억원 중에서 2백8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왜 현재의 형편없는 전화사정을 놔두고서 굳이 철도 특별회계 등 타 부문에
돌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
서울시의 경우 팔 수 있는 백색전화 1대 값이 80만원 대에 이르고 있으며 대구 등 지방도시에서는 7O만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공화당은 모처럼 대 정부 건의를 통하여 전화요금을 올려서라도 전화를 증설하도록 요청, 이미 지난 9월1일부터 전화요금이 50%나 껑충 오르게 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청색전화한대 놓는 값이 22만5천 원이나 들고 그나마 1년 내지 2년씩이나 기다려 한다니 아마 세계에서 가장 전화 값이 비싸고 희귀한 곳이 한국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경우 4불만 내면 청약즉시 가설해 주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5백60불을 내고도 1년 이상 걸려야 하는 셈이니, 이는 첫째로 관영체제의 비능률 때문이며, 둘째로는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EMD교환방식이 어쩌면 이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된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점에서 신임 장 체신이 그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전화 공서 창설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을 우리는 주목하려고 한다. 미국의 사영「벨」회사나 일본의 전전공사 등의 능률성을 볼 때, 공사화나 사영화가 전화사정을 개선으로 이르는 첩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체신 사업은 특별합계로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체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다른 분야의 투융자로 전용되고 있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공사화나 사영화가 당장 실현 불가능한 경우에는 체신 특별회계에서 나온 익금 만이라도 계속 재투자하여야만 할 것이다. 금년도의 추가 익금 2백80억원 만이라도 전액 투자하면 당장 8만대를 더 증설할 수 있어 전화청약 적체현장은 대폭 완화될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우리 나라의 전화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낡은 방식인 EMD교환방식 때문이라는 지적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20년대의 기계적인「스트로저」방식을 약간 개량한 EMD 교환기 기가 높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 크게 뒤떨어진 것임을 자주 지적돼 오던 터인데도 정부가 끝내 이를 대체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불가해한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세계선진국에서 이미 실용단계에 들어선 전자교환방식을 우리 나라에서 전이 적으로 채택하도록 근본적인 시설 대체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전자교환방식에 의하면 비용도 10분의 1밖에 안들뿐만 아니라, 성능도 50배 이상이나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특히 이 같은 전자교환방식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에 의해서도 이미 그「모텔」이 개발되어 국내기술로써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는 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신설 국에서부터라도 시험적으로나마 전자교환방식을 채택하기를 적극 권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가장 핵심적인「인프러스트럭처」(골격구조)라 할 수 있는 전화를 사치품시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터무니없는 전화 값의 고가 때문에 일선 경찰기관이나 행정 기관에서 조차 전화 가설이 어려워 많은 곤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는가. 체신 당국은 전화청약 적체현상을 일소하는데 필요한 과감한 단안을 내려주기 바란다. 국회도 이러한 방향으로 정부의 정책방향을 유도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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