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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hi] 쇼트트랙 1500m 동메달 … 빅토르 안에 열광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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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커플링을 낀 안현수 선수와 여자친구 우나리씨. [소치=뉴시스]

“안현수 선수와 무슨 얘기 했어요?” “그냥 잠깐 만나서 인사만 했어요.” 지난 6일(한국시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만난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짧고 딱딱하게 대답했다. 한국팀 훈련 뒤 러시아팀의 훈련이 이어졌기에 취재진은 그들과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만난 장면이 궁금했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들은 안현수 얘기를 하길 껄끄러워했다.

남자 쇼트트랙에 관한 한 국민들의 성원과 취재진의 관심은 러시아 대표팀의 안현수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10일 한 남성 월간지의 설문(표본 250명)에 따르면 한국 선수가 아닌 안현수를 응원하겠다는 응답이 69%(182명)였다.

안현수가 10일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따내자 온라인은 또다시 요동쳤다. “러시아 국기 흔드는 게 보기 싫다” 같은 부정적 의견이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안현수를 응원하며 “남은 경기에서 꼭 금메달을 따라”고 격려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에 올랐을 때보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지금의 인기가 더 높다. ‘안현수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스포츠사회학자인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나도 안현수를 응원한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그동안 폭행과 파벌싸움, 성추행 사건으로 얼룩졌다. 팬들이 이런 내막을 알기 때문에 안현수를 응원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은 이제 금메달 하나를 따는 것보다 한국의 인재가 세계적인 영웅이 되는 모습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선 안현수가 피해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활약하는 것에 열광한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 선수와 맞붙는 경기에서 안현수를 응원하는 건 이상하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을 다친 뒤 내리막길을 걸었고 2010 밴쿠버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부상 회복 시간이 필요한 안현수에게 선발전 방식과 시기가 불리했던 건 사실이다. 빙상연맹의 핵심 인물 A씨와의 갈등관계 때문이라는 게 안현수 측 주장이다. 2010년 12월 소속팀 성남시청이 해체되자 직장을 잃은 안현수는 러시아 귀화를 선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안현수에게 은퇴 후 대표팀 코치직과 대학교수직을 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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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안’의 재클린 맥네이 올림픽 에디터는 “선수가 더 좋은 지원을 받기 위해 국적을 바꾸는 건 올림픽에서 흔한 일이다. 캐나다 출신 모굴스키 선수 벡 스미스도 더 좋은 지원을 약속한 호주로 국적을 바꿨다”고 말했다. 김병준 인하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한국 쇼트트랙이 뛰어나 국내의 수용 한계를 넘은 것이다. 탁구는 중국 선수들이 귀화해 한국과 일본 대표로 뛴다. 국가로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현수 현상’은 흔한 스토리가 아니다. 현재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않기를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빙상연맹이 “밴쿠버 대표팀 선발 때 부상 중인 안현수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것도 차별”이라고 해명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높아만 갔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안현수는 러시아 유니폼을 입어도 우리 선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또 ‘오죽했으면 한국을 버리고 러시아로 갔겠는가. 한국이 능력 있는 사람을 껴안지 못한 탓’이라는 심리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이어 “국가가 내게 해 준 게 없다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안현수를 통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나만 피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안현수의 성공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수 현상’은 그가 의도한 게 아니다. 그는 지난해 말 JTBC와 인터뷰에서 “이중국적이 허용되는 줄 잘못 알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한국 국적을 버리려 했던 게 아닌데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입장이 곤란해진 안현수는 그동안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선 빅토르 안이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고르 슈베토프 대변인은 “소치 올림픽에서 빅토르가 러시아 국가를 부르는 건 러시아가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빅토르는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이 강하다. 국적뿐 아니라 그는 영혼까지 러시아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치=김식 기자, 신진 기자

"안현수는 희생자 … 그의 부활에 대리만족"
동메달 소식에 "다음엔 꼭 금 따라" 비난보다는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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