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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은 기본, 감염 경로도 전화로 감시 … ‘만사폰통’ 시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 운동량 측정기. 허리에 차고 걸으면 거리·운동 강도·소모 칼로리 등이 측정된다. 이 정보는 병원 등에 전송 가능하다. 2 ‘랩온어칩’(Lab-On-A-Chip). ‘초미세 측정 칩’으로 유-헬스 진단의 핵심기술이다. 손톱만 한 칩 내에 깨알만 한 혈액을 흘려 보내면 혈당·간 효소 수치·병원균 등이 동시 측정된다. 3 형광발색기술. 세포의 여러 물질을 다양한 색깔의 나노(nano)소재로 염색하면 그 물질의 양과 이동 상황을 실시간 측정할 수 있다. 여기서 붉은색은 염색체와 DNA, 녹색은 세포골격이다.

미래의 어느 날 아침 화장실. 소변을 보자마자 ‘나트륨 기준치 이상, 식사 조절 요망’이란 메시지가 뜬다. 10년 전 영화 ‘아일랜드’의 첫 장면이다. 미래 세계를 다룬 이 공상영화에선 인간 복제와 함께 자동 건강측정 장치가 미래기술로 소개됐다.

“저게 정말 될까?” “된다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 영화를 보다가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 답이 풀리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3년 8월, 미국 UCLA 오드칸 교수는 신장(콩팥) 기능 척도인 소변 속의 알부민(albumin)을 휴대전화에 연결된 간단한 기기로 측정한 뒤, 그 결과를 병원에 즉시 전송했다고 국제학술지(Lab-On-A-Chip)에 발표했다. 알부민 측정은 영화 속의 나트륨 측정보다 훨씬 정교하고 어려운 기술이다. 게다가 영화에선 화장실에 부착된 기기로만 소변검사가 가능했지만 오드칸 교수의 기술은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방법이라 어디서든 실행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나, 즉 유비쿼터스(Ubiquitous)한 환경에서 건강을 측정·관리하는 이른바 ?유-헬스(Ubiquitous-Healthcare)?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그럼 유-헬스를 누가 절실히 기다릴까? 세 그룹의 사람들일 것 같다. 치매 같은 병을 가진 노인 환자들, 건강해지려는 일반인들, 그리고 평생 한 번 의사를 보는 것이 소원인 아프리카 빈민 등 원격진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이 그래도 의료 사정이 괜찮은 나라인 점을 감안하면 해외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유-헬스를 소망한다고 볼 수 있다. 유-헬스를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해외 달러를 많이 벌 수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국내엔 1000만 명가량이 유-헬스를 기다리고 있다.

치매환자의 낙상을 알려주는 센서 등장
유-헬스의 실현을 바라는 첫 번째 사람들은 노인병을 앓고 있는, 즉 ‘실버환자 그룹’이다. 미국 밀워키시(市)에 위치한 ‘오트필드 실버타운’은 미국 내 2만 개 실버타운 중 하나다. 여기선 하버드대학 의대와 공동으로 ‘엘리트 케어’(Elite Care)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곳 입주민의 80%는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다. 입주자들의 몸엔 무선 센서가 달려 있다. 무선 센서가 전하는 환자의 위치 정보는 실버타운 중앙관리실에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지역을 이탈하거나 ‘금지구역’에 들어가거나 한곳을 계속 배회하는 등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즉각 간호사가 현장으로 달려가 조치를 취한다. “내가 지금 화장실에 들어간 지 몇 분 지났다” 등 은밀한 사생활까지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은 사람은 센서를 꺼버리면 된다. 하지만 평소 5분가량 사용하던 화장실에서 20분 이상 머무르는 ‘비정상’이 발생하면 실버타운 직원이 즉시 가서 별일 없는지 확인한다. 미국 인구의 14.7%에 해당하는 이런 노인 환자들은 병원 대신 집이나 요양원에서 개인 생활을 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가 자신의 건강을 돌봐주기를 바란다.

대표적인 노인병인 치매는 80세에 급격히 증가한다. 90대 초반엔 41%, 후반엔 50%가 치매 증세를 보인다. 100세 장수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90세가 넘으면 둘 중 한 명은 치매 환자로 지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치매 환자들이 생활하는 실버타운에선 환자의 위치 파악 정도만 가능했다. 지난해 영국 버밍엄대학 무어 박사는 치매 환자가 남을 때리는지 심지어는 욕을 하고 있는지도 몸에 달린 센서와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치매환자가 병에 걸리기 전보다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은 뇌의 문제도 있지만 요로(尿路) 감염 등 다른 원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자가 치매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또는 의사가 처방한 치료법이 실제 생활에 효과적인지를 파악하는 데도 이런 24시간 모니터링이 유효하다.

노인들의 낙상은 ‘큰일’이다. 즉시 조치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합병증으로 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부 스마트폰엔 넘어지는 몸의 가속도 변화를 감지하는 움직임 센서가 내장돼 있다. 이 센서로 인해 치매환자의 낙상 사고 때 알람을 의료진에 신속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치매 등 노인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겐 스마트폰이 멀리 떨어져 있는 의사를 대신해 먼저 몸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인 셈이다. 치매환자보다 더 급한 사람은 폐렴환자다. 폐렴은 국내 사망 원인 5위를 차지하는 병이다. ‘폐렴은 노인의 친구’란 역설적인 표현처럼 많은 노인을 숨지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폐렴으로 폐 기능이 떨어지면 혈액에 산소를 공급하는 힘이 약해져 혈액의 산소 포화도가 저하된다. 산소 포화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분초를 다투는 초(超)응급 상황이다. 환자의 손가락에 끼워놓은 산소 포화도 센서가 깜박깜박 빛을 내는 병원 응급실 광경은 우리 눈에도 익숙하다. 이런 기술의 실현이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해졌다. 2013년 10월 국제마취학회(IARS)는 “혈액의 산소 포화도 센서를 스마트폰에 직접 연결해 의사에게 전송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됐다”고 발표했다. 이제 병원의 크고 비싼 기기 대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알람이 울리면 바로 산소 마스크를 쓴 뒤 의사의 후속 조치를 받으면 된다.

유-헬스를 기다리는 두 번째 그룹은 건강해지고 싶은 일반인이다. 이런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웰니스’(Wellness)라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고 웰니스는 이미 실내 자전거의 디자인까지 바꿔 놓았다. 맥박, 적정 페달 속도, 소모한 칼로리 등 건강 정보를 그 자리에서 알려주지 않는 실내 자전거는 이제 잘 팔리지 않는다. 자전거 말고도 몸의 움직임을 여러 곳에서 자동 분석해 하루 소모한 열량을 측정하는 기기가 등장해 만보기 대신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의 만틀러 박사는 적외선만으로 혈당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지금처럼 피를 뽑지 않아도 손목시계를 차거나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만 해도 혈당이 실시간 측정된다. 내가 방금 먹은 케이크 한 쪽 때문에 혈당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면 과식하기 힘들 것이다. 출렁이는 뱃살을 잡는 데 아내의 잔소리보다 스마트폰이 더 효과적인 세상이 되고 있다.

원격진료는 의료 여건이 열악한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치매 노인이나 건강해지려는 일반인은 당장 목숨이 위태롭진 않다. 진단과 처방을 신속하게 받으면 생명을 건질 수 있는, 더 절박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겐 유-헬스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아프리카에선 전 세계 질병의 90%가 발생하지만 아프리카 가나의 의사 수는 10만 명당 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00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지역에선 해마다 60만 명이 결핵으로 숨진다. 내성(耐性)이 있는 결핵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찾아내는 데만 이곳에선 두 달이 걸린다. 진단 키트만 제대로 공급돼도 이런 검사는 이틀이면 가능하다. 최근 내성균을 죽이는 항생제 식별 시간을 5시간으로 줄인 칩(chip)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결핵 같은 감염성 질병을 현장에서 즉시 진단한 뒤 먼 곳에 있는 의사의 처방을 받게 하는 유-헬스 기술은 이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데려온다.

비전문가도 현장에서 즉석 검사
비(非)전문가라도 현장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유-헬스 진단의 핵심기술은 ‘칩 속의 실험실’ 이란 의미인 ‘랩온어칩’(Lab-On-A-Chip), 즉 ‘초미세 측정 칩’이다. 현재 병원 진단 검사의 64%는 혈액·소변·세포 등 액체 속의 어떤 물질, 예를 들면 콜레스테롤·바이러스·DNA 등이 대상이다. 손톱만 한 칩 내에 머리카락의 30분의 1 정도 굵기의 채널을 수십 개 만들고 여기에 깨알만 한 혈액을 흘려 보내면 혈당·간 효소수치·병원균 등이 동시 측정된다. 수영장에 넣은 모래알 정도의 소금도 감지할 만큼 예민한 초미세 측정 칩이 유-헬스의 핵심기술이다.

초미세 측정 칩과 스마트폰이 만났다. 스마트폰은 유-헬스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스마트폰엔 배터리 전원이 있고, 계산 기능과 GPS 기능이 있다. 또 화면으로 데이터를 실시간 볼 수 있다. 의사가 멀리 있어도, 전기가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누구라도 혈액 속의 병원균을 1시간 내에 검사해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의사에게 즉시 보낼 수 있다. GPS 기능을 이용하면 감염병이 어떻게 퍼지는가도 실시간 파악 가능하다. 지구촌 스마트폰 사용 인구는 이미 11억 명에 달한다. 세계 인구의 44%가 저개발국 등 외딴 곳에서 살고 있다. 원격진료가 필요한 곳이다. 스마트폰과 바이오기술이 만나는 그곳에 유-헬스가 있다. IT 최강국이며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내세운 나라가 한국이다. 국내 연구자들이 바빠졌다. 최근 간 검사와 쥐의 암세포 위치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용 바이오센서를 개발한 정봉현 단장(BINT 융·복합 헬스가드 연구단)은 “한국이 10년 내에 급성 병원균 진단 등 유-헬스 분야를 석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헬스는 의료 사각지대의 희망
감기로 동네 병원에 갔다가 “눈에 황달기가 보이니 간 검사를 해보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들은 지인은 췌장암 조기 발견으로 다행히 생명을 건졌다.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면서 진료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맞다. 단순 영상과 숫자 데이터만으로 복잡한 사람의 몸을 수학문제 풀 듯 진료할 수는 없다. 지금 국내에서 유-헬스의 현장 적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기상의 오류가 발생할 경우 불분명한 책임소재, 더 심해질 큰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의료의 상업화 부작용 등을 우려하는 국내 의료계와 유-헬스 산업을 국가 먹거리로 키우려는 정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지혜가 절실하다. 필자는 확신한다. 세계 최고의 IT 보급률, 반도체 기술의 탄탄한 기반 위의 바이오칩 기술, 여기에 세계인이 몰려올 정도로 뛰어난 의술, 이런 삼박자가 잘 맞아서 한국 의료가 유-헬스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세계 곳곳의 의료 사각지대에 새 희망을 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www.bioc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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