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 한 명의 섬노예도 없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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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곳은 현대판 노예섬이었다. 서울 구로경찰서가 염전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장애인 등 두 명을 구출하면서 전남 신안군에 있는 1000여 개의 섬 가운데 한 곳의 실상이 드러났다. 사람을 팔아넘긴 직업소개소, 임금도 주지 않고 5년 넘게 폭력을 일삼으며 일을 시킨 염전 주인까지…. 이들의 탈출을 왜 막았느냐는 취재진에 질문에 염전 주인은 “개가 나갔으니 찾아야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사람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노예상이 한국 사회에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에 치욕을 느껴야 한다. 섬노예들이 돌을 던지면 닿을 거리에 파출소가 있었는데도 이들은 그곳에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다. 지역 경찰 역시 이런 사실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섬노예 중 한 명이 우체통에 구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넣었고, 이를 받은 피해자의 모친이 신고한 게 수사의 단서가 됐다. 지역 경찰은 물론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섬노예란 말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 건 2006년부터였다. 그럼에도 여태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탈출하기 힘든 섬이라는 공간의 폐쇄성, 염전 사업주와 인척관계로 연결된 주민 등이 섬노예 문제를 쉬쉬하게 했을 수 있다. 실제로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푼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 노력이나 자정능력에 의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섬노예의 인권 문제를 더 이상 지역에 맡기지 말고 직접,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나서야 한다. 무허가 직업소개소부터 철저히 단속해 노예 인력을 공급받는 업자들과 맺은 은밀한 커넥션을 깨는 게 시급하다. 지역 경찰과 지방 행정기관이 심각한 인권침해 현장을 왜 조기에 발견하지 못했는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혹시 싼값에 노동력을 쓰려는 지역 토호와 이를 비호하는 지역 경찰이나 공무원 사이에 침묵의 카르텔이 있었다면 이 역시 발본색원해야 한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고, 무선통신 세계 1위란 게 부끄럽다. 섬노예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