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고 고독했던 투쟁-「베일」벗겨진 닉슨 사임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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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외신종합】그에 덮쳐진 일련의 최악의 사태와 싸우느라 지치고 여윈 백악관의 주인은 3사람의 방문객들을 문까지 배웅하고 있었다. 자신의 「재키트」를 꼭 쥐었다 다시 앞으로 끌어내리면서 『몸무게 축났어. 매우 견디기 어려웠소』라고 말하는 백악관 주인은 이제 막 사임을 각오한 듯 했으며 그의 배웅을 받은 손님가운데 한 사람인 「휴·스코트」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는 「닉슨」대통령을 돌아보면서 『나라가 붕괴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 순간부터 「닉슨」대통령의 최후 행동은 임박해졌고 그의 최후의 행동은 마치 칼을 내려치듯 빠르고 깨끗했다.
▲4일 아침=「닉슨」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수열은 4일 「캠프·데이비드」산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독한 사람인 「닉슨」대통령은 명장을 하고자 할때는 으례 이 산장을 찾았는데 그때도 바로 그러한 순간이었다.
▲5일 아침=「닉슨」대통령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오랫동안 그를 옹호해온 친구「로버트·그리핀」공화당 상원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닉슨」대통령은 사임해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때부터 「미시간」주의 평민 출신인 「제럴드·포드」부통령은 자기가 미국의 제38대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해야할 것임을 알아 차렸다.
그로부터 6시간 후 「닉슨」대통령은 그의 변호사들로부터 대통령의 「워터게이트」도청사건 은폐 음모가담 사실이 눅음 되어있는 녹음「테이프」전 사본을 공개하고 변호인들조차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음을 밝히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이때 보좌관들은 이 「테이프」내용을 미리 하원 법사위의 「찰스·위긴츠」의원에게 비밀리에 통보, 「닉슨」으로 하여금 「테이프」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대통령은 이때 『한달만 여유를 달라. 그동안 모든걸 정리해서 사임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탄핵저지 전략을 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헤이그」는 「위긴즈」의원이 이미 「테이프」내용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백악관이 이를 공표하지 않으면 「위긴즈」가 공개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클레어」변호사도 대통령 변호를 포기, 사임하게 될 것이라 진언했다.
▲6일 상오=「닉슨」대통령은 비상 각의를 소집하고 자신은 결코 사임치 않을 것이며 탄핵이라는 헌법절차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태는 줄달음쳤다.
「헨리·키신저」미 국무장관과 「알렉산더·헤이그」백악관 수석보좌관은 「닉슨」이 사임하지 않으면 백악관 보좌관이 전부 퇴진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키신저」장관은 「닉슨」이 사임은 불가피하다고 판단, 전 각료들에게 대통령의 부사임 선언을 경솔히 지지함으로써 대통령을 더욱 비극적인 파국으로 오도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6일 하오=4시 직후 마침내 「닉슨」대통령이 「워터게이트」은폐음모에 가담했음을 시인하는 백악관 성명이 발표되었다.
당시의 의회의 상황을 「닉슨」옹호자인 「열·랜드그레브」의원은 『일종의 광증이 발작했다. 그것은 마치 선상반란과 같았다』고 말했다.
▲7일 상오=「닉슨」은 「스코트」의원에게 전화를 걸고 「골드워터」의원·「로즈」하원의원과 함께 백악관에 와 달라고 초청했다.
「스코트」의원은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실시될 경우 「닉슨」옹호자는 12내지 15명 이내 일 것이라고 말했고 「골드워터」의원은 「닉슨」옹호 표는 『겨우 4표에 불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책상 위에 발을 얹어 놓은 채 이 말을 듣고있던 대통령은 「로즈」의원에게 『하원에서 나를 지지하는 것은 10표나 될까』고 물었으며 「로즈」의원은 그보다는 많을 것이나 그 이상을 크게 상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이때부터 「닉슨」대통령은 사임을 결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7일 하오=저녁6시58분 「닉슨」대통령은 그의 가족들을 모아놓고 백악관 전용사진사 「올리버·애트킨즈」를 불러 만찬 전에 가족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닉슨」이 방안으로 들어설 때 대통령의 두 딸은, 흐느껴 울었고 부인 「페트」여사도 울었다. 「애트킨즈」는 「닉슨」대통령이 이미 그의 가족들에게 사임할 것을 말했음을 알아 차렸다. 대통령은 가장 서럽게 우는 둘째딸 「물리」여사를 껴안으며 달랬다.
▲8일 상오=11시20분 대통령은 「포드」부통령을 접견했다.
12시23분 「로널드·지글러」백악관 대변인은 기자실에 나타나 『오늘 밤9시 미합중국 대통령이 그의 집무실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해 국민에게 연설할 계획이다』고 발표했다.
감정을 억제하느라 애쓰는 「지글러」대변인은 곧 기자실을 떠나버렸다.
▲8일 하오=대통령은 하오8시 백악관 각의 실에서 46명의 의회 지도자들과 고별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닉슨」대통령도 울고 의회지도자들도 울었다.
하오 9시「닉슨」대통령은 『본인은 내일 정오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 시각은 6년전 8월8일 하오9시 그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 받은 뒤 전당대회에 참석하여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미국은 국민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실수로 인해 고통을 겪고있다』고 선언한 때와 같은 날 같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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