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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대중화의 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재무부는 자본시장 육성책의 일환으로 이번에는 또 증권인수체제를 고치고 인수금융지원방책을 새로 마련했다. 물론 이것은 종래의 인수체제가 지니고 있던 결함을 시정하고, 보다 손쉽게 증권의 인수를 실현케 한다는 현상 타개적인 의도를 품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 근본취지는 더욱 적극적인 의지에서의 자본시장육성과 기업공개의 추진을 위한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래 여러모로 자본시장육성책을 강구하였으나 큰 진전이 없었고 보면 이렇게 라도 하여 정책노력을 기울일 법도 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책적인 노력이 자본시장 육성이나 증권의 대중화에 과연 얼마만큼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설령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침체를 타파하고 일시적인 활기를 불어넣는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장래의 우리나라 자본시장육성에 크게 보탬이 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도리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모처럼 싹트기 시작했던 자본시장 형성의 움직임마저 멍들게 할 우려가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시장육성의 여건이 성숙되어 있지 않는데 정책이 무리하게 인위적인 시장을 성립시키려고 하는데서 도리어 부작용이 크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우리의 경우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는 까닭은 주식인수체제의 미비나 시장운영규칙과 기술의 미비 또는 증권금융의 부족 등과 같은 거래적 요인에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것보다는 시장에 내놓을 만한 증권이 부족하고 투자가가 증권을 살만한 여력도 별로 없으며 설령 여력이 있다 해도 증권투자수익이 다른 형식의 투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얼른 보기에 기업은 많다. 또 그 많은 기업들은 극히 단시일 안에 크게 성장하였고 앞으로도 그런 추세를 지속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이 주식만 공개한다면 시장에 내놓을 만한 주식은 얼마든지 있고.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주식도 흔하게 있을 법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보기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단시일 안에 급성장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실상 빚더미 위에 이루어진 것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기업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리고 성장속도가 빨랐으면 빨랐을수록 더욱 부실한 기업이고, 따라서 기업은 많아도 시장에 공급할 만한 주식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아무리 주식공개를 말하고, 주식인수 체제의 확립을 외쳐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주식이 못되는 것을 어찌하랴.
시장에 내놓을 만한 주식이 있다 해도 주식투자의 여력이 없으면 이것 역시 아무리 증권인수체제를 고치고 증권금융을 하여도 주식투자의 증대를 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과연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가계의 저축여력이 적고, 특히 중산층의 형성이 빈약한 형편임을 감안할 때, 증권투자 수요 면에서도 자본시장육성의 여건은 정부 당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성숙되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수익성이 낮은 증권을 무리하게 시장에 내놓게 하여 선의의 투자자들로 하여금 이를 사게 함으로써 빚어질 뜻밖의 사태다. 이것은 이미 우리들이 몇 번이나 경험한 바와 같이 증권시장의 발전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자본시장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은 그것이 적극성을 띠면 띨수록 더욱 수익율이 낮은 부실한 기업의 주식을 억지로 시장에 내놓게 하고, 그러한 주식을 투자자들이 사도록 하는 정책과 같은 인상을 많이 안겨 주고 있지 않은가.
자본시장 육성을 위한 노력은 여러모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도 시장인 이상 시장원리를 살리면서 무리없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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