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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제4장 관동지방의 한적 문화|제18화 메밀국수의 성지 심대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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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 일본의 수도이자 심장부라 할 동경도가 자리잡은 「무사시노」 (무장야) 평야가 고래로 한국계 도래인들에 의해 개척된 땅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다. 그렇지만 광막한 이 평야의 젖줄이라 할 「다마가와」 (다마천)를 거슬러 서북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이제는 한국에서조차 좀처럼 찾기 어려운, 너무도 한국적인 정서가 깃들인 사적들의 속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젊은 아낙네들이 마주 앉아 고운 명주 옷감을 다듬이질하는 똑딱똑딱 소리가 새어 나오고, 동네에서는 간간이 점막을 뚫듯 컹컹 짖어대는 복슬개 소리가 들려오고…. 이런 풍경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분명히 한국적 정서를 읊은 시의 주제였었다.

<고분군엔 한반도 유물>
바로 그런 풍경이 이곳 「무사시노」 이곳저곳에 깔려, 일본 최고의 노래들을 담은 만섭집에도 그 유방을 남기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다마천 맑은 냇물에
손수 짠 비단 천을 담가
살랑살랑 헹구고 또 내다 바래는
어여쁜 계집아이들의 모습 아리따워라.』
(『만섭집』권 14·동국가)
실로, 이 「다마가와」라는 이름부터가 아득한 옛날, 한국계 도래인들이 가져다 심은 『「가라무시」 (저마=모시)가 많은 고장』 (다마천)에서 유래한 것.
그밖에도 이 고장 지명 가운데는, 이를테면 「고마에」 (박강=고려에서 온 복슬강아지를 백이라 썼다), 「기누따」(침=다듬이질), 「죠후」 (조포=베를 바랜다), 「무레」 (모례=물레) 등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말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지금의 동경도 세전곡구를 비롯해서 동경도 북다마군 박강정, 삼?시·무장야시·천기시·길상사시 등 전부를 포함하는 구다마향 일대는 기록에도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적혀 있다.
『백제의 주군이 응신천황 14년 고려국 박주의 고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귀화…』, 정착한 곳 (석정정의씨 유고 『옥천사대관』·김정주 편 『한래 문화의 후영』 상권 27P)이라고도 했고, 또 이 일대에 산재하는 고분군 (박강 고분군)에서 발굴된 무수한 출토품에 의해 우리 나라의 한사군 설치 시대 (BC107∼AD313) 이후에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개척된 고장이라는 설도 있다. 백강 고분군 중에서도 가장 많은 출토품을 낸 귀총에서 해방 후 평양 부근에서 발굴된 낙랑시대의 백동 신인수 수경과 똑같은 「상방」이라는 작자명이 든 동경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종합컨대, 이 일대는 아마도 고구려 왕손 약광이 거느리고 온 일족들과 그 후손들이 퍼져서 대대로 정착했던 곳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본 연재 제3화 및 제17화 참조).
아마도 그들은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 다마천변 일대에 뽕나무와 모시, 메밀 등을 심어 가꾸고, 고국에서 가져온 직조 기술로 비단과 삼베옷을 해 입고 깨끗이 빨래 (조포)하고 다듬이질하며 또 때로 문중의 경사 때에는 손수 누른 메밀국수를 나누어 먹는 습관을 가졌던 것이리라.

<절 창건자도 한국계>
그래서 멀리 천평 5년 (733) 에 개기 했다는 확실한 사전을 가진 이곳 고찰 심대사 주변에는 그 당시를 연상케 하는 많은 사연들이 그대로 보존돼 전승되고 있다.
심대사 (동경도 조포시 심대사정 소재)는 현재 동경 근교에서 옛 무장야의 원형을 거의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휴일에는 동경 시민의 나들이로 초만원을 이룬다.
신숙에서 떠나는 경왕제도 전철로 약 1시간이 걸리는 조포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불과 5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부근에는 동양 최대라고 하는 신대 식물 공원 (동경도영), 신대 대녹지, 동경 천문대 등이 있어 사면이 온통 울창한 수목과 화초들로 공기가 향기롭다. 정식 명칭으론 부악산 창락원 심대사라 하는 이 고찰은 도시 그 절을 개기한 중 만공 상인이 바로 한국계 학승으로서 특히 이 절이 보관하고 있는 구 일본 국보 백봉 시대 작 (685년명) 석가여래의상 또한 우리 조상들에 의해 이곳에 까지 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는 이 절 주변에서도 1천2백년의 역사를 팔면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메밀국수의 기막힌 맛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주요 관심사로 됐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이 절의 개기를 에워싼 애틋한 사랑의 얘기가 또한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절에 보관돼 있는 화·한문 두 종류의 심대사 연기회권에는 이 절에 얽힌 한인 조상들과의 끊을 수 없는 사연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어느덧 1천수백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생각은 그 당시에 비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 얘기는 이 절을 창건한 만공상인이 분명히 한인을 아버지로 하고, 현지 일녀를 어머니로 하는 고승으로 묘사돼있으나, 그 얘기 줄거리는 그 부모들의 비련을 소재로 하여 일본에 공식으로 불교가 전달되기 이전, 이미 한반도를 통해 불교 교리가 전해지고 있었음을 암시하고있다.
얘기는 대체로 이러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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