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안의 어버이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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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또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가장들이 점점 봉급장이가 되어 가는 현대의 도시생활에 있어서는 주말이 찾아온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모내기에 쫓기고 김매기에 바쁜 농가에서야 일요일이라 해서 일손을 쉴 수도 없을 것이고 1년 열두 달 풍월이나 읊고있던 옛 한량들에게는 아예 주말이다, 주초다 하는 경계부터가 있을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주말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리고 보면 어디까지나 현대의 도시생활에 있어서이다. 주말의 뜻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가족끼리 만나서 가족끼리 하루를 지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생활의 기능 분화는 옛날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시켜주었던 가정이라는 소우주를 붕괴시켜버렸다. 벌이를 위해서 아빠는-경우에 따라선 엄마까지도-한 주일의 대부분을 가정인으로 보다는 직장인으로 밖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아이들의 교육은 부모들의 손에서 벗어나 교직의 전문가에 위탁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면 새벽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과 밤늦게 귀가하는 아빠의 숨바꼭질이 주중 내내 부자간의 대화는커녕 서로 대면할 기회조차 앗아가 버린다.
술 취해 돌아와서는 술이 깨면 나가버리는 가장에게 있어서나, 또는 온종일 모임이나 부동산 소개소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주부에게 있어서 「집」은 이미 본래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가정」(홈)이라는 따스함을 잃어버리고, 차차 써늘한 「가옥」으로 화석해 버린다.
아빠가 아빠구실을 그만 두어버릴 때, 여편네의 바가지나 서슬 앞에서 엄부의 위신을 팽개치고 비열한 웃음을 웃고 있을 때, 그리고 엄마가 엄마구실을 그만 두어버릴 때, 식모에게 모든 집안 일을 맡겨 버리고 사회 속에 뛰어들어 자모로서의 「이미지」를 팽개쳐 버릴 때, 그러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심성이나 그 장래가 어떠한 것이 되겠는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최근 들어온 미국의 한 주간지에는 지나친 남녀의 평등주의 끝에 성의 무차별시대를 가져온 미국 가정의 희비극을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부모가 부모구실을 포기해버림으로써 생긴 『부모 있는 고아』들을 위해서 미국 보건교육성은 10대 소년·소녀들에게 『어린애 돌보는 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도 전한다. 웃지 못할 얘기가 아니겠는가. 우리 나라에도 이미 풍미하고 있는 장발의 사내아이나 바지바람의 계집아이들의 이른바 「청년문화」는 어떤 의미에선 그들의 어버이세대 스스로가 어엿한 남녀와 부부의, 유별을 잃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 볼 수는 없겠는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내아이는 사내아이로서 그리고 계집아이는 계집아이로서 분명한 천연의 본성을 곱게 키워가기 위해서는 뭣보다도 먼저 가정에 있어서의 안정된 아버지 상·어머니 상의 확립이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주말은 온 가족이 가족끼리 만나는 날이다. 이 모처럼의 주말에 있어서까지도 혼자만의 낚시며 등산에 미쳐 낚시과부·등산과부를 울게 하는 가정은 없는지, 또는 주부까지 집을 비워 일요일마저 「부모 있는 고아」들이 집을 지키는 가정은 없는지, 모두다 「주말의 뜻」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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