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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 욕구 넘치지만 옆구리 찔러줄 사람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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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쏘시개 변호사’ 사회공헌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목영준(59·사진) 전 헌법재판관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2012년 9월 퇴임한 그는 개인적으로 하면 미미할 수밖에 없는 사회공헌활동의 ‘판’을 키워 보다 큰 효과를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신이 불쏘시개가 돼 다수의 변호사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목 전 재판관은 2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결합해 변호사들이 보다 쉽게 사회공헌활동에 접근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며 “누구나 갖고 있는 사회공헌에 대한 욕구를 보다 쉽게 실현시킬 수 있도록 ‘넛지효과(nudge effect)’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넛지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의미로 강요가 아닌 부드러운 개입으로 타인의 행동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법을 일컫는 말이다.

 목 전 재판관이 국내 변호사 수만 500명이 넘는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5월. 헌법재판관에서 은퇴한 지 7개월여 만의 일이다. 목 전 재판관의 영입과 함께 김앤장은 그를 위원장으로하는 사회공헌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별다른 역할 없이 ‘고문’이라는 직함만 달고 활동하는 다른 고위법조인 출신 로펌 변호사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왜 사회공헌일까. 법관생활 23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6년 등 도합 29년간 사실관계를 판단하고 법을 해석해 적용하는 데 매진해왔던 목 전 재판관에게 사회공헌이란 의외의 분야다. 그는 전문가로서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법조인과 의사, 변리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은 국가가 부여한 자격에 의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예요. 물론 자격을 얻기까지 개인의 노력도 많이 들어갔지만 국가가 자격을 부여하는 한도를 제한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혜택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국가가 준 자격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일정 부분은 사회에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목 전 재판관의 합류로 김앤장의 사회공헌활동은 보다 체계적이고 창의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구성원들은 사회공헌위원회가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우리 위원회 1호 사회공헌활동이었던 개성공단 법률 지원에 참가할 변호사를 모으기 위해 내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10분 만에 30여 명이 지원한 겁니다. 2명을 뽑는데도요. 다들 하고 싶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선착순으로 뽑았습니다. 매월 이어지는 다른 사회공헌활동에도 항상 지원자가 넘칩니다. 누구나 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마음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주변 여건을 조성하는 게 제 일인 거죠.”

 외부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사회공헌활동도 그의 작품이다. 지난해 8월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는 을지병원과 합동으로 봉사단을 꾸려 경기도 가평군의 수해피해지역을 방문했다. 1층에서는 을지병원에서 나온 의사·약사·간호사 등 12명이 의료봉사를 하고 2층에서는 김앤장 변호사 5명이 수해에 따른 보상 및 배상 문제와 관련한 무료법률상담을 진행했다. 남은 60여 명은 수해지역 복구작업에 가담했다. 목 전 재판관은 “한번에 필요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사회공헌 분야에도 도입한 것”이라며 “다양한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수혜자들에게 최대의 만족감을 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는 한 단계 더 진화된 사회공헌활동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른바 ‘소기업인 법률 아카데미’다. 한번에 100여 명 정도의 지원자를 받아 필수적인 법률지식과 인문학 강의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그는 “동네 치킨집 사장님에서부터 구멍가게 주인까지 소규모 점포 및 공장을 운영하는 모든 분들을 대상으로 법률강좌를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라며 “각 대학 로스쿨과 협업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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