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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차동엽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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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꿈! 어젯밤 나의 꿈.

김포 미래사목연구소에서 만난 차동엽 신부는 희망 없는 시대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까 기도하고 있었다. [장진영 기자]

이상한 꿈을 꾸었노라.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 심으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

언제든 잊지 못할 이 꿈은

깨어 흩어진 이 내 머리에도

굳게 박혔노라.

다른 모든 것은 세파에 스치어도

나의 동경의 꿈만이 존재하나니.

- 황순원(1915~2000) ‘나의 꿈’

2011년 여름, 양평의 황순원 선생 문학촌 ‘소나기 마을’에서 이 시를 횡재한 듯 주웠다. 안영 작가의 촌장 취임을 축하할 겸 30년생 철쭉 두 그루를 싣고 방문했던 터에, 역사관에서 건졌던 것.

 이 시를 읽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꿈을 담은 이 시는 꿈 매니어인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7세 되던 평양 숭실중 시절 교지에 발표했다는 이 시. 일제의 침략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31년 당시 정황을 반영하는 저항 의식을 은밀히 내장한 채, 그는 원대함을 넘어 터무니없어 보이는 꿈을 꾸었다. 17세에 꿈을 이야기했던 황순원에게 공감했던 것은 나 역시 꿈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여 나는 묘소 참배를 마치고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님의 꿈, 제가 사겠습니다. 철쭉 두 그루에.”

 무릇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황순원의 그 꿈이 한류(韓流)의 형태로 다채롭게 이루어져 가고 있음에 나는 연신 경탄한다. “세계를 짓밟아 문지른 후/ 생명의 꽃을 가득 심으고/ 그 속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렀노라”고 읊조렸던 그 꿈은 희망 매니어들에겐 복음이다.

 이제 나의 꿈은, 종교인으로서는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과 한국 사람으로서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그 위상을 떨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는 더 없이 힘찬 응원이 된다. 읽을 때마다 나의 꿈은 설렌다.

차동엽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