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독일 방송이 "다른 나라도 학살했다"고 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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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공영방송 NHK의 모미이 가쓰토 신임회장의 위안부 발언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망언이다. 그는 취임회견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쟁 지역에는 (위안부가) 있었으며 독일·프랑스 등에도 있었다”며 “한국이 일본만 강제 연행했다고 주장하니까 이야기가 복잡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소가 문제되는 건 유례없는 ‘일본식 강제성’ 때문이다. 식민지나 점령지에서 여성들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감언·강압이 많았고 일본 관헌의 개입이 있었다. 위안소 생활도 강제적인 것이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는 이를 분명히 했다.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위안소는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됐고,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담화는 명시했다. 위안부 모집에 일본 관헌의 개입이 있었고 위안소 생활은 ‘참혹한 강제’였던 점도 확인했다. ‘강제성’에 관한 이런 조사와 기록이 독일과 프랑스에도 있는가.

 결론적으로 고노 장관은 일본 정부를 대표해 위안부들에게 사과했다. 공영방송 회장이 일본 정부 조사도 믿지 않는가. 공영방송 회장이 정부 담화를 지워버릴 건가.

 한 나라의 공영방송은 국가의 지성과 도덕성을 상징한다. 특히 사실(史實)에 꽉 묶인 정통 역사관이 생명이다.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의 회장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독일 말고도 많은 나라의 군대가 전쟁 중에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책임을 피한다면 그가 회장직에 머물 수 있을까. NHK 기자들의 보도 독립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모미이 회장의 역사관이 NHK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일탈에도 종류가 있다. 아베 총리는 731이 적힌 비행기에 올라 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는 731부대의 생체실험에 희생된 마루타를 욕보인 반(反)인륜이었다. 공영방송 회장이 강제적인 환경에서 끌려가 ‘여성’을 짓밟힌 위안부를 모독하는 것도 똑같이 반인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