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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쉴 새 없는 대남 평화 공세, 자신감인가 초조감인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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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호 03면

조용철 기자

-북한이 왜 이렇게 연속적으로 평화 공세를 펼치나.

중앙SUNDAY 대담 전문가들이 본 북한 ‘중대 제안’의 이면

▶남성욱=“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강조한 만큼 실무 부서가 이를 구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남북관계는 호흡이 길었는데, 요즘은 실시간 거래다. 북한의 통일전선부는 장성택 처형 뒤 김정은의 지시에 아주 예민해졌기 때문에 연초부터 빠른 속도, 짧은 호흡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짧은 기간에 남북 사이에 공 넘기기가 활발한 것은 처음이다.
장성택 사태에서 보듯 체제 불안정성이 높아졌고 이걸 수습도 해야 한다. 김정은이 나름대로 스키장도 건설하고 현지 시찰을 하고 있지만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김근식=“이 문제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2013년 북한의 행태와 금년 대화 공세에는 차이가 있다. 김정은의 행동에서 진폭이 크고, 주기가 짧고, 속도가 빠른 것은 젊은 지도자의 스타일이지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최근의 모습은 김정은 체제가 대남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감의 토대는 경제와 군사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망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평가가 많다. 경제에 피가 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또 핵무기 보유로 미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젠 경제건설에 나서는데 그러려면 외부 지원을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한·미국·중국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 처음에는 김정은 지시대로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으로 버티니까 ‘그럼 남측이 원하는 대로 일단 하자’는 것이다. 자신감에 기초한 양보다.”

-그렇다면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평화인가.

▶남=“남북 사이에 평화 개념은 다르다. 북한은 한·미 합동 키 리졸브, 독수리 연습처럼 체제에 위협적인 훈련을 중지시키는 것을 평화라고 본다. 그것이 목표다. 우리는 낮은 단계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교류활동을 시작해서 높은 단계의 비핵화 조치로 가는 성실한 입장을 보이면 평화가 온다고 본다.”

▶김=“북한은 평화체제를 요구한다. 김정일은 죽기 전까지 핵협상, 6자회담이 비핵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반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6자회담이든 북·미 협상이든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과 연계한다는 입장이다. 2013년 6월에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하면서 첫째 어젠다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두 번째는 평화체제, 세 번째가 핵으로 정했다. 평화를 핵과 동등하게 놓거나, 평화를 먼저 얘기해야 핵을 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공세는 핵을 인정받은 자신감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엔 ‘받지 않으면 지난해처럼 대결적으로 가보자. 아니면 얼마든지 양보할 테니 평화롭게 지내자’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난감할 것이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다르게 대하나.

▶남=“지난 정부의 상대는 김정일, 지금은 김정은이지만 큰 차이는 없다. 북한 체제는 구조적 독재여서 누가 지도자가 돼도 유연성의 한계가 있다. 노선의 어느 부분을 강조하느냐의 차이다. 아들이 아버지 정책을 갑자기 바꾸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김씨 3대의 공통 목표는 적화통일로 가는 분위기 형성이다. 다만 김정은의 입장에서 장성택 처형과 같은 불안정 상황을 극복하고 지도력을 보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북·미 관계가 냉각돼 있고, 중국과의 관계도 여의치 않다.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에서 통로를 찾는다. 통남봉미 전략으로 가는 게 차선책이라 보는 것이다.”

▶김=“집권 2년차에 유화 공세를 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2009년 하반기 클린턴이 8월 방북했고, 김정일은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락’했다. 이산가족 상봉도 먼저 제의하고 개성공단 억류자도 석방했다. 9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 전선부 부장이 특사조문단으로 와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과 임태희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만났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 2년차에 최대한의 유화 공세를 했다. 그러나 안 받으니 2010년 천안함 사태가 나왔다. 이후 북은 기대를 버린다. 박 대통령도 비슷한 2년차다. 대대적 유화 공세 퍼붓는다. 다른 점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유화공세를 훨씬 더 강화해 남쪽이 거절 못할 만큼 펼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감의 반영이다.”

▶남=“자신감이 아니라 초조감의 반영이다. 북한은 매 정부 때마다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정상회담이 남는 장사라는 걸 확실히 안 것이다. 내부결속도 얻는다. 그런데 진보 정권에서의 정상회담 조건을 보수 정권이 수용할 수 없다. 또 두 번 평양으로 올라갔으니 이제 내려와야 하는데 여전히 평양을 고수했다. 밝히기 어려운 비화들이 많지만, 여전히 정상회담은 7대 3으로 북한에 남는 장사다. 진정으로 북한이 자신감이 있었다면 내려와야 했다.
김정은은 또 김정일과 달리 초조하다. 김정일은 1974년에 내정자가 돼 15년 이상 부자 공동 정권을 해왔다. 과거 중앙정보부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과 김정일이 다퉜다는 얘기가 많다. 아들은 ‘나도 할 만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다르다. 뭐 좀 해보려는데 아래서 싸운다. 장성택 문제는 군부 간의 갈등으로 보인다. 경제가 나아졌다지만 사회주의 경제는 ‘좁은 섬’ 경제다. 그래서 일어난 충돌로 장성택이 처형됐다. 그러다보니 민심이 흉흉하다. 이런 불안감을 대외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자신감은 크게 떨어져 있다.”

▶김=“장성택 처형이 이권다툼의 결과라는 분석은 맞지만, 그 원인은 다르다. 먹고살게 많아 그렇다. 파이가 커졌다. 이걸 놓고 사활을 건 투쟁을 한다. 전엔 조정됐지만 지금은 그런 카리스마가 없는 어린 지도자의 말에 군부는 콧방귀를 뀐다는 것이다. 그걸 잘 봐야 한다.”

-중대 제안을 어떻게 해석하나.

▶김=“북한은 2004년 이미 중대 제안을 했다. 상대방에 대한 선전활동 중단 같은 것들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풀리면 북이 빠른 속도로 심도 있게 대화 공세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받으면 아마 북도 바뀔 것이다. 사실 북한의 중대 제안을 안 받을 이유가 없다. 북이 남북 사이에 핵 얘기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건 처음이다. 그러면 박근혜 정부가 진정성에 매달리지 말고 협상에 우선 나서야 한다. 장성택 사건은 북한의 불안정성이 커져 파열음이 튀어나온 것이다. 김정일의 수령 시스템하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북한의 제안엔 진정성이 문제다. 왜 북한은 거창한 제안을 하면서 이산가족을 마지막 4번 항목에 넣지 못하는가. 이런 식이기 때문에 ‘과거에 한두 번 당했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북이 중대 제안에 걸맞은 태도 변화를 보여야 신뢰를 갖고 손을 잡을 수 있다. 지금 남쪽에 공이 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이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재발 방지에 대한 책임 있는 약속이다. 3대 선결조치를 먼저 북이 해줘야 우리 사회에 담론이 형성될 수 있다. 남측에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5·24조치를 풀려면 최소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유감스럽다는 정도의 수사(修辭)가 나와야 한다.”

-북이 그렇게 나올 수 있을까.

▶김=“그럴 수 있다. 핵심 요구 사항은 신변 보장과 재발 방지인데, 신변 보장은 이미 김양건과 현정은이 만든 합의서에 있다. 얼마든지 공식 문서도 만들 수 있다. 재발 방지에 대한 북의 마지막 입장은 ‘만나서 합의를 만들자. 관광 재개를 먼저 하자’는 거다.”

▶남=“아니다. 북한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넘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당위다. 이걸 해야 박근혜 대통령도 움직일 수 있다.”

-북한의 행동이 있어야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인가.

▶김=“북도 요구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잘돼 선순환 구조, 신뢰 프로세스로 가면 좋은데 악순환 구조로 바뀌면 문제다. 그럴 우려가 크다. 박 대통령은 원칙을 중시하는데, 사사로운 고집에 빠지면 안 된다. 조금 더 큰 틀에서 볼 수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남=“금강산 관광을 예로 들면 쉽지 않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연 1000억원 이상을 가져다 주는 사업이겠지만 우리에겐 사람이 죽고 사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를 확실히 한다는 게 고집은 아니다. 다만 무엇을 사과로 받아들일지, 혹은 어느 정도 사과해야 할지 같은 실무적 문제는 있을 것이다. 북한이 성의를 보여야 진전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다시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은 앞으로의 관계 개선에 진정성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나.

▶남=“남북관계에는 의도와 현상이 다 중요하다. 너무 의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진전이 힘들다. 때로는 현상이 의도를 바꾸기도 한다. 만나 보니 역시 같은 민족이구나 하고 확인되면, 나타난 현상이 의도에 대한 평가를 바꿀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가장 원초적인 사업이다. 동서독 통일에도 1950년대 말부터 돈 주고 사람을 데려오는 교류가 깔려 있다. 통일로 가기 위해 사람이 오가야 한다. 그래서 상징성이 크다. 그를 통해 의도와 관계없이 긍정적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김=“맞는 말이다. 진정성이란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 이를 적극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너무 의도만 봐서는 될 것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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