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물건 취급 … 정보 유출은 인권 유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대란의 원인은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니다. 인권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미국의 인권 운동가이자 변호사인 맷 대니얼스(50·사진)는 이번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이렇게 정의했다. 한국의 인권상황 연구조사차 방한한 그는 미국에서 인권문제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 ‘굿 오브 올’을 만들어 이끌고 있다. 23일 기자와 만난 대니얼스는 “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당한 소비자들은 정보를 도둑맞은 게 아니라 인권을 유린당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인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왜 이번 사건이 인권 문제인가.

 “기업가들이 소비자들을 동등한 인격을 가진 주체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소비자를 자신들 마음대로 이용해도 되는 수단(means to serve me) 내지는 인격이 결여된 객체로 본 것이다. 소비자들의 정보는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물건처럼 여겼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인권의식 부재의 이유는 뭘까.

 “한국은 공동체의식이 강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집단의 유대감이 강하고, 권위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자체는 좋은 관습이고, 법적 틀이 잘 갖춰져 있으면 작동도 잘한다. 그런데 기업들이 바로 이런 의식을 ‘남용(abuse)’한 것이다. ”

 대니얼스는 이런 기업의 횡포는 과거 독재정권과 메커니즘이 같다고 설명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돈과 힘이 있는 자가 가난한 자들을 약탈했다면,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많은 정보와 이를 활용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 개인 정보 노출의 위험에 취약한 소비자들을 이용해 이득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48년 제정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을 거론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임의적 간섭을 받아선 안 된다. 누구나 그런 침해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헌장 12조)는 조목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니얼스가 한국의 인권문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게선 “한국이 ‘탄광 속 카나리아’이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탄광 속 카나리아’란 표현은 과거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 카나리아를 이용해 유독가스 유출 여부를 판단한 데서 나왔다.

 -왜 한국이 카나리아인가.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대중이 누릴 수 있는 자유 는 확장됐지만, 인권을 보호해야 할 법제도는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리더이기 때문에 그 격차가 더 크다. 따라서 이번 일을 한국이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전 세계에 롤모델이 될 수 있다.”

 -해결책은 뭘까.

 “결국 대중이 움직여야 한다. 악덕 기업이 어딘지 지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 역시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을 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거액의 벌금을 물리는 등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뉴욕의 할렘가에서 성장한 그는 다트머스대학교를 졸업하고 브랜다이스대 로스쿨 과정, 정치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지난해 ‘굿 오브 올’을 만들고 대중을 위한 인권교육 등에 주력하고 있다.

유지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