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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단칼에 뜯어고쳐 혁명하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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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논설위원

집권 2년차 공식이 된 듯하다. 가깝게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대통령 취임 다음해 교육과정 개정을 선언했다. 교육과정이란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에게 국가가 학교를 통해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정해주는 설계도다. 교육부가 고시하는 교육과정이 교과서 해설서쯤으로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학교가 가르칠 내용을 정해주다 보니 전국의 모든 초·중·고가 설계도에 영향을 받는다. 1년 동안 수업 일수나 시간은 얼마나 할지, 어떤 과목을 몇 시간 가르치고, 이를 위해 어떤 자격을 갖춘 교사를 뽑을지를 결정한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8학년도부터 문·이과를 통합해 가르치는 ‘2015 교육과정 개정’ 계획을 얼마 전 밝혔다. 앞선 정부가 개편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다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 교육을 물·화·생·지(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로 나누는 게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 인사들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학교가 문과와 이과를 통합해 가르쳐야 하나 현실은 20년 넘게 물리교육과·화학교육과·생물교육과·지구과학교육과로 칸을 나눠 가르치고, 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교육과정은 이처럼 어떤 과목을 누가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교과서 개발과 교원양성,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교육방법론 등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 특히 대학 입시와 수능의 틀은 바로 교육과정을 근거로 한다.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1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 A·B 선택형 수능도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낳은 부산물이다. 그런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

 교육과정은 밥솥과 같다. 주걱이나 수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생계라는 뜻이다. 전체적인 틀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학과 교수들이 짠다. 이어 교육부는 교육과정심의회를 구성해 각계 인사들이 전문가들이 그린 그림을 심의하게 한다. 밥솥 주변엔 교대·사범대와 교육학회, 교수, 교사, 교원노조 등이 지켜보고 있다. 교육부와 심의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진다. 과목 신설 전쟁, 과목별 시수(시간수) 확보 전쟁이 그것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가 소프트웨어 과목을 고교 정규 교과에 넣고 수능 필수과목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적 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교육부 관료가 설령 긍정적으로 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교육과정심의회가 이를 검토해 긍정적인 의견을 내야 한다. 시수가 줄어들지 모른다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다른 학회의 반대도 넘어야 한다.

 정부가 교육과정에 손대겠다는 건 교육과정이란 밥솥에 연관된 공생관계를 깨겠다는 뜻이다. 문·이과를 통합하려면 통합 교과를 가르칠 사람을 뽑아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선 기존의 칸막이식 ‘○○교육과’ 체제를 건드려야 한다. 이걸 건드리지 않으면 그 개혁은 개혁이라 할 수 없다. 문·이과를 통합하려면 통합 교과의 시수를 정해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선 기존의 교과 시수 시간을 건드려야 한다. 이걸 건드리지 않고 대충 타협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이주호 전 장관도 지금처럼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일정표를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발표한 개정 교육과정을 2년 만에 다시 뒤집는 무모함까지 보여줬다.

하지만 문·이과 통합은 이런 개정 작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그런데도 복잡하게 얽힌 개혁의 진행 과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갈지 실행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교육과정 개정이 학교에 끼치는 혼란은 어떻게 풀지 디테일에 대한 고민도 부족해 보인다.

여기에다 올해 8월까지 전체적인 개정 방향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중 세부적인 개정안을 만든 다음, 2016년까지 교과서를 개발하겠다는 일정도 무리하기 짝이 없다.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20년 동안 굳어져온 체제다. 혁명하듯이 단칼에 뜯어고치겠다고 덤비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교육당국의 과욕이 걱정스럽다.

강홍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