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내준 이웃 종로초교, 영어 강의로 보답한 의경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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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3일 종로초등학교 방과후수업 교실에서 중부서 의경들이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 대구 중부서]

31년간 담을 쌓고 지낸 이웃 초등학교가 운동장을 내주자, 의경들은 공짜로 영어 수업을 선물했다. 대구 중부경찰서 의경부대(방범순찰대) 이야기다. 의경 105명이 근무하는 중부경찰서에는 구보·족구조차 할 공간이 없다. 1983년 지은 3471㎡ 낡은 건물이어서다.

 경찰서와 2m 높이 담장 하나를 둔 종로초등학교엔 1만2119㎡ 운동장이 있지만, “시끄럽다”는 등의 이유로 학교 측은 의경들의 사용을 거부했다. 매일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대구 북구 금호 둔치로 가서 구보 등을 해야만 했다. 이러길 31년째. 초교와 경찰서는 이렇게 불편한 사이였다. 지난해 3월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박종철(48·경감) 방범순찰대장이 나섰다. 2012년 부임한 정용숙(61) 교장을 찾아가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 고생한다. 운동장 사용을 허락해 달라”고 설득했다. 교장도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며 허락했다.

 이때부터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과 의경이 함께 쓰는 공간이 됐다.

 한 달쯤 뒤 의경들이 “우리도 선물하자”며 아이디어를 냈다. 영어로 방과후 수업을 하는 것. 당시 이경이던 미국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온 이준무(24·현 강북경찰서 근무)씨 등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의경 4명이 나섰다. 경북대·대구교대·한국외대 등을 다니거나 졸업한 인재들이다.

 이렇게 시작된 의경의 공짜 영어 선물은 매주 화·목·토요일 1시간30분씩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수준도 상당하다. 수업 대부분이 영어로만 진행되고, 교재 역시 의경들이 검증해 학교에 추천한 것만 사용한다. 5학년 강원석(11)군은 “형님들 지도를 받으면서 외국인 말도 알아듣게 됐다. 영어시험도 100점”이라고 말했다.

 박 대장은 “의경 입대 경쟁률이 19대 1이 넘어 학력 수준이 상당하다”며 “이들을 활용해 지역 사회를 돕는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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