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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서민금융 성공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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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수년간 신용카드대란·가계부채 같은 부실 문제가 커지면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이 확대돼 왔다. 이명박 정부의 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 대출에서부터 현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채무 조정 같은 것들이다. 취약계층의 자활·자립을 지원한다는 취지야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수혜 대상의 설정이나 상환 가능성에 대한 면밀하고 충분한 검토가 없으면 자칫 더 큰 부실을 양산할 위험이 있다. 이를 피하려면 저신용층 안에서도 개인별로 정밀한 개인신용평가가 이뤄지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기존의 개인신용평가시스템은 금융사 입장에서 위험 고객을 걸러내는 데 치중했다. 또 신용 성향·능력처럼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정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연체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따라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신용과 신용평가사의 신용평점 간에 괴리가 컸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성적인 요인을 반영해 신용평가 체계를 개선하고 있다. 기존의 표준화된 점수와 함께 세밀한 개인 신용 성향·능력을 고려하여 신용평가의 정확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금융거래 정보는 물론 비금융 정보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평가의 예측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노력은 취약계층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저신용층의 금융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금융단층구조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즉 금융 취약층의 제도권 금융으로의 신용 사다리를 제공하여 신용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한편 금융사의 경영 효율성의 제고라는 이중의 목표에 부응하여 금융소비자·금융사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신용평가시스템의 개발과 안착에는 비금융 정보와 데이터 공유를 위한 사회 인프라가 핵심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서민금융전용의 신용평가를 위해 아파트 임대료, 전기·가스요금, 통신요금 등의 다양한 비금융 정보 활용을 늘려오고 있다.

 서민금융정책은 금융서비스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정책담당자와 금융소비자 모두 서민취약계층 보호라는 복지적 관점에 치우칠 수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서민금융정책은 상환 가능성에 따른 금융 논리가 기본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금융논리를 무시한 서민금융은 가계부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당사자는 물론 국민경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서민금융정책은 금융 취약층을 배려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되 동시에 금융 남용·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도 충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혜 대상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설정하고 개인별 상환 예측성을 제고하는 한편 금융시장에 혼돈이 없도록 금융과 복지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성공적인 서민금융정책이 투명하고 정확한 개인신용평가시스템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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