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부로 지배 말고 봉사를" 세계 1%에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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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다보스포럼에서 교황청 정의평화위원장인 피터 턱슨 추기경이 교황 메시지를 대독하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턱슨 추기경은 교황 후보로 거론됐다. [다보스 로이터=뉴스1]

이 무렵 스위스 다보스에 모이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정치·경제 지도자 또는 석학들이다. 사실상 세계를 움직이는 상위 1% 이내의 사람들이다. 혹자는 1% 중 1%라고도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이들에게 “부로 인간을 지배하지 말고 부가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보스포럼 개막식에서 교황청 정의평화위원장으로 흑인인 피터 턱슨 추기경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교황은 비즈니스를 ‘고귀한 소명’이라고 했다. 그러곤 “비즈니스가 진보의 촉매가 되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뒤처졌다. 자본주의가 보다 높은 목표를 추구해야 고귀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평등의 신장을 위해선 경제성장 이상을 요구한다. 그건 단순히 복지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부를 보다 잘 분배할 수 있는 결정과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소명”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들에게 “당신들이 탁월함과 도덕적 자산으로, 의지와 선견지명을 가지고 이 같은 목표를 추구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빈부격차 또는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날 발언이 특별히 수위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교황 권고’를 통해선 자본주의 행태를 두고 ‘새로운 독재’ ‘돈에 대한 숭배’란 표현을 쓰며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차단하고 투기행위를 근절하는 등의 노력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직후 “교황이 마르크스주의자 아니냐”는 공격이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발언은 형식적으로만 보면 12억 명의 가톨릭 교도에게 하는 권고였다.

 이번엔 아예 문제의 당사자이자 해결 주체일 수 있는 1%에게 직접 호소한 것이다.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마침 다보스포럼이 지난주 발표한 ‘2014 글로벌 위기’ 원인 중에 구조적 고실업과 심각한 소득 불균형이 포함됐다.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전 세계 70억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부보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교황이 다보스를 방문하지 않고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 이상으로 국제적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신 스틸러(scene stealer)’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3월 27일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다. 백악관은 21일(현지시간) “교황을 만나 빈곤과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 위한 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는 사이 가톨릭 교회의 고질병은 계속 공개됐다. 최근 불법자금 매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교황청 회계담당자 몬시뇰 눈치오 스카라노에게 돈세탁 혐의도 추가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신의 바티칸은행 계좌를 통해 부자 친구들의 수백만 유로를 돈세탁해 줬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바티칸은행 개혁을 추진 중이어선지 보도의 파괴력은 크지 않았다. 엘마르 매데어 전 교황청 근위대장이 “게이 네트워크가 교황청에 있다는 주장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는 영국 가디언의 보도 추이도 유사했다.

 교황청에 주재하는 한 인사는 “교황을 직접 만나면 상당히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분이란 걸 알게 된다. 그런데도 교황의 말씀이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며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아주 상당히 특별한 교황”이라고 평가했다.

 ◆안티 다보스인들=1% 중에서도 다보스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거물도 많다. 다보스포럼의 초대장을 지속적으로 거부한 인사들이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대표적이다. 애플 최고경영자인 팀 쿡, 그리고 생전의 스티브 잡스도 참석하지 않았다.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2년 전부터 거리를 둬왔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늘 대리인을 보낸다. 여기엔 “기라성 같은 존재들이 모여 서로 아첨에 열중하는 곳”(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이란 불편함도, 3박4일 동안 2500여 명을 봐야 하는 데서 비롯된 비효율 문제도 있다는 분석이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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