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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패전병 「오노다」소위 30년만에 루방도서 투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루방도(필리핀) 10일 = 외신종합】 태평양전쟁의 일본군 패잔병 「오노다·히로오」(52) 소위가 그의 52세 생일날인 10일 30년 동안 숨어살던 「필리핀」의 「루방」도 「정글」속에서 일본 및 「필리핀」의 합동 수색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제2의 요꼬이」인 「오노다」전 일본군국소위는 이날 그의 전 직속장관인 전 일본군 소좌 「다니구찌·요시미」씨가 내보인 「투항명령서」를 보고 「우라베·도시오」 일본대사 입회 아래 「필리핀」공군 사령관 「호세·랑쿠도」소장에 정식으로 투항했다.
「오노다」소위는 합동수색대원으로 이곳에 온 그의 형인 「오노다·도시오」씨를 본 순간 팔로 어깨를 껴안으면서 『오랫동안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노다」소위는 현지 진찰을 받은 뒤 「루방」섬을 출발, 11일 상오 「마닐라」에 도착, 「마르코스」「필리핀」대통령도 접견할 예정이다.
「오노다」소위는 1944년 일본군 정보학교인 육군 「나까노」학교를 졸업, 「필리핀」에 파견된 뒤 미군이 「루방」도에 상륙했을 때 항복치 않고 밀림 속으로 달아나 저항을 계속 해왔다.
당시 그의 상관이었으며 현재 일본 「규우슈」에서 적상을 하고 있는 「다니구찌」씨는 「오노다」에게 그의 부대가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투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같은 명령을 내린 것을 후회한 「다니구찌」씨는 「루방」도 27개소에 우편함을 설치하고 「히로히또」일본천황의 휴전과 항복명령문을 게시함으로써, 「오노다」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에게 숨어 있는 곳에서 나와 투항하도록 권고했었다.
일본정부는 그 동안 「오노다」소위가 생존해있다는 정보에 따라 5차에 걸쳐 현지에 수색대를 파견, 수색했으나 「오노다」소위는 이에 저항, 72년 10월에는 「고즈까·긴시끼」1병과 함께 「필리핀」경찰에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 「고즈까」1병은 사살되고 그는 도망했었다.
그러다 지난 2월20일 「루방」도를 관광 여행하던 일본 청년 「스즈끼·노리오」씨(24)가 「헤베」산 속에서 「오노다」소위를 만나 약15시간동안 얘기도 나누며 30여장의 사진도 찍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었다.
「스즈끼」씨는 「오노다」소위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설명했으나 그는 미국의 허위선전이라면서 전쟁 당시 직속상관이던 「다니구찌」소좌의 명령이 없는 한 미군과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스즈끼」의 보고에 따라 일본 후생성 관리 등 6명의 구출반이 현지에 도착, 1주일간에 걸쳐 수색작업을 벌여 왔다.
「오노다」소위는 일본 99식 소총 한 자루와 칼 한 자루·군복 및 몇 점의 옷·취사도구·회전전등·「코피」·사탕·소금 등과 식기 4개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라디오」는 마을에서 훔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루방」도의 어민과 농부들은 일본 패잔병들이 30년 동안 이 섬에 숨어 있으면서 30명의 섬사람을 죽이고 곡식을 불사르고 약탈해갔다는 불편을 「필리핀」정부에 진정하고 처벌을 요구했다.
한편 「오노다」의 어머니 「오노다·다마에」(88) 노파는 아들이 구출된 데 대해 꿈만 같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72년 1월 28년만에 「괌」도의 「정글」에서 구출된 일본 패잔병 「요꼬이·쇼오이찌」(58)도 매우 기쁘다면서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을 「오노다」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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