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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폐화정책의 좌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의 역할을 완전히 배제시켜 이른바 SDR제도로 전환하려 했던 미국의 국제통화정책은 이제 빛을 볼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EC가 금의 공정가격을 인상해서 공적결제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검토하면서 일어난 2월중의 금 파동은 이제 단순한 투기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제통화개혁의 전조였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 동안 금 폐화와 SDR중심제를 지지하던 일본이 공식성명을 통해 EC의 의견을 지지키로 했다면 이는 국제통화개혁작업에서 큰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여 국제통화개혁작업의 주축세력은 이른바 EC와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구성되는 10대 강국이라 하겠는데 일본이 EC측의 의견을 지지하게되면 미국만이 SDR제를 고집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금을 폐화시키고 SDR중심으로 IMF를 개혁한다는 작년의 「나이로비」합의는 일만 백지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제 IMF개혁작업은 IMF총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EC안에서의 금 복위와 일본의 참가라는 실력행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가능성어 짙어진 것이다.
물론 금 복위에 따른 후속협상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될 것은 분명하나, 이는 큰 애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금 공정가격의 인상방법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달러」의 금 평가를 수정하는 방법도 있으나, 각국 통화의 금 평가를 동시에 조정하는 방법도 있다. 전자의 경우, 미국의 평가절하가 여타 국에 무거운 부담을 주기 때문에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후자를 선택하게될 공산이 짙은데, 이 경우 각국 통화간의 현행 환율은 변화가 없어 아무런 환율조정도 뒤따르지 않게 뇐다.
그러나 이 경우 금 평가조정으로 파생되는 과잉유동성의 사후처리에 애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크·뤼에프」는 금 평가인상분을 「달러」잔고의 상환자원으로 미국에 지원하면 실질적인 유동성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EC가 이른바 역「마셜」계획으로 미국을 지원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금 복위라는 큰 방향을 실현시키는데 있어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한편 금 평가를 어느 수준으로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유동성 증가규모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유동성 조정작업은 금 재평가문제와 직결된다. 전문가들의 추정으로는 「온스」당 1백20「달러」내지 1백30「달러」수준이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하므로, 이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화폐용 금은 대체로 1천2백∼1천3백억「달러」규모가 될 것이며, 현재의 「유러달러」잔고에 접근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금 평가조정은 결국 금 보유고의 거의 전부를 지배하는 미국과 EC의 일방적인 이득으로 귀결되는 것이므로 여타국은 앉아서 평가차액만큼의 손실을 보는 셈이다. 따라서 유류 가격의 일방적인 인상으로 타격을 보고 있는 후진국으로서는 금 평가조정으로 또 다른 실질적인 손실을 보게 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류 가격인상으로 후진국 원조기금 설치론이 제기되었듯이 후진국들은 금 평가조정에 따른 간접적인 손실을 보상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금의 복위가능성은 일본의 EC지지를 계기로 더욱 커졌다 하겠으며, 때문에 국제통화체제의 개혁작업은 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으나 금 복위에 따른 다양한 이해관계의 변화를 우리로서도 깊이 있게 분석,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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