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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고서 문턱 있음을 알았다 … 함께 걷기는 함께 문턱 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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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나는 아이를 낳고서 문턱을 알았다.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가 방문 문턱에 걸려 넘어진 다음에야 나는 문턱이 높다는 걸, 아니 문턱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낮은 문턱이 누군가에겐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 35년이 걸렸다.

 문턱이라는 단어를 다시 들은 건 이태 전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만났을 때였다. 세계 최초로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한 일흔여섯 살의 프랑스 할아버지가 들려준 무용담은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기억에 남은 건 그가 실크로드를 걷고서 세운 ‘쇠이유(Seuil)’라는 단체였다. ‘쇠이유’가 문턱이란 뜻이다.

 쇠이유는 말하자면 비행 청소년 교정단체다. 하나 활동 방식이 특이하다.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을 프랑스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서 3개월 동안 1600㎞를 걷게 한다. 하루 평균 17㎞씩 걸리는 셈이다. 그렇게 3개월을 다 걸으면 집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석방한다(솔직히 이 기발한 발상을 덥석 받아든 프랑스 법무부가 가장 놀랍다).

 걷기여행이 교화와 갱생에도 효과가 있을까. 지난주 제주도에서 열린 ‘월드트레일즈콘퍼런스’에 쇠이유 관계자도 참석해 몇몇 사실을 더 알 수 있었다. 프랑스 소년원에서 청소년 1명을 교정하는 데 하루 900유로가 들지만, 쇠이유는 300유로만 든다. 프랑스 비행 청소년의 재범률이 85%인 반면에 쇠이유 출신의 재범률은 15%다. 청소년 1명과 어른 1명이 3개월을 함께 걷는다.

 역시 그랬다. 옆에 누가 있었다. 생면부지의 어른이지만, 석 달 내내 아이의 곁을 지킨 누군가가 있었다. 교정 이전에 치유가 있었고, 치유 이전에 동행이 있었다. 문턱 앞에서 서성이는 아이에게 손을 내민, 문턱을 먼저 넘은 어른이 있었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들려준 일화다.

 “한번은 어떤 중년남자가 나를 보더니 넙죽 절을 하는 거야. 제주올레가 아들놈을 사람 만들었다고. 아들이 하도 말썽을 피워서 제주올레를 1주일 같이 걸었다네. 다 걸으면 휴대전화인가를 사준다며 꾀었다지 아마. 처음엔 연신 투덜대던 녀석이 하루 이틀 지나니까 조금씩 변하는 것 같더래. 그러더니 마지막 날 그랬대. ‘아빠, 무거우면 배낭 제가 멜까요?’”

 쇠이유는 1년에 청소년 15∼20명을 해외에 보낸다. 더 보내고 싶어도 남의 집 아이와 석 달을 걸을 수 있는 어른을 구하지 못해 못 보낸다. 그래도 부럽다. 우리는 제 자식하고 제 동네도 못 걷는 형편이다.

 이제 내 아이는 더 이상 방문 문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더 높고 험한 문턱이 내 아이를 가로막고 넘어뜨릴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와 길을 걸을 테다. 손을 잡고 문턱을 넘을 테다. 더는 문턱을 넘을 기력이 없는 나에게 내 아이가 손을 내밀 때까지.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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