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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구조의 개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가 최근에 검토중이라고 하는 유통구조 개혁방안은 한마디로 말해 유통「마진」의 폭을 축소하기 위해 다단계적이고 다기화 된 현재의 유통과정을 보다 단순화하려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쌀이나 밀가루 등과 같은 생필품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결시키는 유통형식을 취하게 하고, 생산자가 많고 실수유자가 한정되어 있는 산업용품의 유통은 직배제로 하며, 수요자가 많은 독과점 상품에 대해서는 구매전담기구를 두거나 중간 유통기관을 설치하고, 또 대리점을 통한 유통방식에 대해서는 이를 무력화해 생산자가 흡수토록 한다는 등 구상이 곧 이를 말해준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통과정이 복잡하고 다기화 되어 있을 때보다는 단순화되어 있을 때 유통「마진」의 폭은 적게 마련이고, 상품의 최종 판매가격도 싸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상품을 소량 유통케 하는 것보다는 대량 유통케 하는 것이 단위당 유통비용이 더욱 싸게 먹히고 따라서 동일한 이윤율 밑에서는 유지「마진」의 폭이 좁혀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관계당국이 구상중이라는 유통구조 개혁방안에 대해서는 그 취지를 일단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확실히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통과정의 단축과 단순화를 위해 대도시의 대단위 종합유통단지의 조성, 재래식 기존시장의 「쇼핑·센터」화 안 등과 같이 유통경제의 하부구조가 되는 대 단위 물적 유통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아이디어」같은 것은 비록 한정적인 의미에서나마 그러한 구실을 다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 나라 유통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것이 되기에는 너무나 미흡하고 유통「마진의 폭을 축소시키는데도 매우 불충분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것이 억지로 유통과정의 단순화를 가져온다 하더라도 겉모양의 변화일 뿐, 유통「마진」의 폭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그 까닭은 첫째, 이와 같은 유통구조의 단순화와 유통과정의 단축화는 물적 유통의 대형화와 대량화를 전제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생산자 또는 공급자의 한 쪽 측면에서만 따질 때 가능한 것이지, 수요자가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세분화되고 있을 때는 불가능한 것이고, 또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불편하고 비능률적인 것이다. 이런 경우 유통구조는 겉보기로는 근대화되고 대형화된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실지에 있어서는 유통경제가 비능률화되고 유통「마진」의 폭은 더욱 커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술한 것과 같은 정부 구상은 유통구조의 단순화에 성급한 나머지 시장의 경쟁력을 촉진시키지 않고 도리어 이를 외면하는 경쟁 제한적인 요소를 더욱 강화하려는 인상을 준다는 데도 큰 문제가 있다. 정부당국이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손을 써야 할 부문은 유통과정의 형식적인 단순화나 근대화가 아니라 바로 시장의 능률화를 저해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비경쟁적 요소를 없애고 경쟁 제한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새 방안은 도리어 직배제와 구매전담기구의 설치, 생산자의 유통기구 지배화 등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 제한행위가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소지를 만들고 있는 것을 가리울 수 없다. 결국 이것은 원래의 의도인 유통마진의 폭을 축소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것이다. 정부는 좀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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