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현실화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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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물가 현실화 작업은 이번 주를 고비로 일단 매듭지어진다. 철근·면사 등 원가 압력이 큰 것을 골라 주중에 가격 조정을 해 주되 여타 상품에 대해서는 가급적 시장 경제 원리에 맡길 것이라 하므로 물가상의 충격 요인은 이제 모두 양성화되는 셈이다.
물가 현실화에 따라 축적된 압력의 양성화로 물가가 어느 수준에서 새로이 안정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분명치 않으나 물가 정책은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앞으로 이번 조치의 충격이 양성화할 기간은 반년 내지 1년에 이를 것으로 평가되는데 그 양성화 과정이 새로운 균형을 지향해서 수렴되느냐, 아니면 부정형으로 확산되어 악순환 과정을 파생시킬 것이냐를 가름하는 것은 오로지 정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원리적으로 말하여 소득이 물가보다 뒤지는 한 소비 규모는 실질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며, 때문에 물가는 새로운 균형점을 향하여 수렴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번 물가 현실화 조치는 다른 정책을 제대로만 집행한다면 새로운 물가 수준에서의 안정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인 다른 정책을 물가 현실화와 조화시키려면 커다란 정책적 결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선 물가가 새로운 균형점을 향하여 수렵 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투자 성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져야 한다. 물가 현실화 과정이 완결되기 전에 투자를 계속 지원하려 한다면 추가 투자로 파생되는 추가 수요가 물가의 안정화 과정에 저지적으로 작용, 인플레의 악순환 과정을 촉진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이번 조치의 여파가 안전히 흡수 소화될 때까지의 기간은 조정 기간으로서 확고히 설정하여 분수에 넘는 성장-투자를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처럼 성장은 성장이고, 물가는 물가라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앞으로 물가를 새로운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요인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차피 물가 현실화로 우리의 수출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 사후 대책을 어떻게 마무리 짖느냐를 깊이 검토해 주어야 하겠다.
우리의 국제 수지 사정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며, 이번 물가 현실화 조치는 대외 균형에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다. 따라서 대외 균형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기 위한 시장 전략은 무엇이며 교역 조건 악화를 상살 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냐. 이 문제를 잘못 다루면 물가의 확산 과정에 부채질 할 염려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임금 정책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이냐. 원리적으로 자금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 플러스 생산성 향상률 범위 안에서는 안정화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충격적인 물가 압력을 풀어 주는 경우 경제가 원리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기대키 어렵다. 그렇다고 노동 생활자의 실질 생활 문제를 외면하면서 임금을 억제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수준으로 임금을 조정해 주는 것이 안정화와 모순되지 않는 것이냐를 정부와 기업은 깊이 검토해 주어야 하겠다.
이 싯점에서 물가 상승으로 생기는 부담을 어느 한 층이 전부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무겁다. 그러므로 새로운 물가 수준에서 각 기업은 이윤 폭을 줄인다는 자세로 적정한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임금을 조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가 다 같이 국제적으로 밀려 오는 물가 압력을 현명히 분담해야 하는 것임을 모두 자각해서 안정화에 기여하도록 자세를 바꾸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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