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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 '저지보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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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저지보이스’의 무대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주크박스 뮤지컬 ‘저지보이스’의 무대이면서, 동시에 1960년대 인기 그룹 ‘포시즌스’의 모창 가수 공연 무대다. [사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어설픈 짜깁기보다 백번 낫다. 노래와 노래를 연결시키기 위해 억지로 엮어 만든 엉성한 줄거리는 주크박스 뮤지컬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17일 첫 내한공연을 한 뮤지컬 ‘저지보이스’는 다큐멘터리 구성을 끌어와 그 한계를 극복했다. 단, 향수를 먹고 사는 ‘옛날 노래 메들리’가 그 노래에 얽힌 추억이 적은 타문화권에서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저지보이스’는 1960년대 인기를 끈 미국의 남성 4인조 그룹 ‘포시즌스’의 결성 과정부터 해체 이후까지의 실화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포시즌스’ 멤버 중 한 명인 밥 고디오가 뮤지컬 제작에 직접 참여해 이야기의 진위 검증을 했다. 내한공연 팀과 함께 방한한 ‘저지보이스’ 제작관리자(프로덕션 슈퍼바이저) 리차드 헤스터는 작품에 대해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가능성도 없었던 네 남자의 성공 스토리”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대에서 강조된 건 인간승리 성공신화보다는 이들이 남긴 노래 자체였다. 62년 처음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쉐리(Sherry)’를 비롯해 그룹 해체 이후 리드 보컬 프랭키 밸리가 67년 솔로 가수로 히트시킨 ‘캔트 테이크 마이 아이즈 오프 유(Can’t take my eyes off you)’까지, ‘포시즌스’의 대표곡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뮤지컬 넘버 수는 무려 34.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명사격인 ‘맘마미아’에서 불린 노래가 24곡이란 사실과 비교하면 ‘저지보이스’에서 노래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배우들의 노래는 얼핏 립 싱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포시즌스’와 비슷했다. 제작사에서 보컬 프랭키 밸리 역을 맡을 배우를 키우기 위해 ‘프랭키 캠프’를 운영할 정도로 공을 들인 덕이다. 리차드 헤스터는 “3옥타브 반에 이르는 음역과 키 180㎝ 이하의 마른 체형,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외모를 갖춘 ‘프랭키 닮은 꼴’을 찾아, 프랭키 밸리의 목소리와 몸놀림을 재연하도록 훈련시킨다”고 말했다.

 ‘저지보이스’ 공연장 분위기는 마치 ‘포시즌스’의 콘서트장 같았다. 노래 사이사이 당시의 뒷얘기를 배우들이 내레이션 형식으로 전했다. 군더더기 없이 탄탄한 구성, 간결하고 정제된 흐름 속에 세련미가 두드러졌다.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다.

 200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저지보이스’는 현재 브로드웨이와 라스베이거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동시 공연 중이다. 그동안 전세계 1750만명이 관람, 12억 달러(1조273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런 흥행작이 이제서야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작품 바깥에 있는 ‘저지보이스’의 아킬레스건 때문이다. 60년대 초반 한국은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살았던, 1인당 GNP 100달러 안팎 최빈국이었다. 인공위성까지 쏘아올린 미국 사회와 추억을 공유하기에 생활 수준이 너무 달랐다. ‘포시즌스’ 노래를 들으며 떠올릴 기억이 없는 한국 관객들의 감성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내한공연 무대에 선 ‘저지보이스’의 당면과제다. 작품성만으로 그 벽을 뛰어넘고 흥행에 성공할지, 그래서 내한공연을 주최한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김용관 대표의 기대대로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제작까지 이뤄질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지영 기자

 ▶뮤지컬 ‘저지보이스’=3월 23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8만∼14만원. 02-541-3184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 형식의 재미가 뛰어나다. ‘탈(脫) 맘마미아’ 에 성공한 작품.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기가 막히게 잘 짜인 구성. 40∼50대라면 확실히 좋아한다. 20대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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