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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 해석되는 뇌물의 한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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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형법상 증수회 죄로 다스려지는 뇌물에 대한 해석이 사회통념을 벗어나. 차차 변질 해석되고 있음이 최근 사회의 이목을 모았던 중요 사건들의 연속 무죄판결에서 나타나고 있다. 뇌물에 대한 법원의 해석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지난 22일 서울 형사지법 합의7부(재판장 김경기 부장판사)가 전 농어촌개발공사 총재 차균희씨에 내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의 뇌물수수죄 사건 무죄판결과 지난해 10월11일 같은 재판부에 의해 내려진 전 한양대총장 김연준씨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의 알선 뇌물공여죄부분 무죄선고의 판시 이유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재야법조인들이 지적하고 있다.
형법(129·133조)에 규정된 증수회 죄 구성요건 상의 뇌물은『직무와 관련되어 받은 이익을 총칭하며 이로 인해 제공자와 대가 관계가 있을 때에는 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있으며, 이제까지 으례 뇌물죄의 성립 여부는 금전 등 거래가 있었느냐 아니냐에 의해 대체로 좌우됐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공무원인 학교장(학장)이 후생비를 받고 학생을 편입시킨 것은 교장의 직무에 속하므로 이를 금전 수수로 보아 수회 죄가 성립된다』(53년5월16일)고 하였고 또『그 동기가 직원의 후생을 위한 것이라 해도 직무에 관련, 돈을 받았을 때는 위법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55년10월18일 판례)는 등 사무실 비품이나 후생비를 위한 금전수수행위까지도 광범위하게 수회 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판결된 차균희씨 사건의 경우 판결문에서 보면 검찰의 공소사실 중 ▲68년 농개공 총재 재직시 자회사인「한국냉장」신축공사(공사액 15억원)를 삼안 산업에 맡기면서 예관수 사장으로부터 당좌수표 3천 만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사실은『차 피고인 자신이 이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또 예 사장이 직접 전한 것이 아닌 만큼 뇌물로 인정할 수 없고 ▲산하 회사인「한국 산토리」와「일본 산토리」회사의 합작문제가 말썽이 났을 때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자회사인「한국양식」「선일 포도당」등으로부터 3백40만원을 거둔 것은『뇌물이라기 보다는 산하회사를 위한 섭외 비로 쓴 것으로 인정되며 뇌물로 해석할 수 없다』▲68년12월 농개공 산하 회사 직원들의 보험가입을 둘러싸고「대한화재」·「고려화재」등으로부터 1백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은『증거가 없다』(사실인정여부)는 것이 재판부의 무죄이유.
또 김연준씨의 알선뇌물 공여죄 부분에 대한 무죄이유(재판장 김형기 부장판사)는『72년7월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장군에게 한양대 체육대학의 학생증원을 알선해 달라고 4백10만원을 주었다는 공소사실은 당시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윤씨와의 인간관계로 미루어 볼 때 뇌물이라기 보다는 동 부대 소속 배구선수단의 일본 전지훈련 경비조로 찬조한 것이라고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또 전 김천 세무서장 문병환씨에 대한 특가법 위반 죄 사건의 경우『관련업자로부터 1백 만원을 받은 것은 뇌물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미흡하다』고하여 무죄를 내렸었다. (73년9월19일·재판장 서울형사지법 김형기 부장판사)
액수다과를 기준으로 삼을 때 지난68년 서울 고법 이범렬 판사(현 변호사)는 7백원 상당의 쇠고기와 과자를 사건 당사자로부터 받은 사법공무원에 대해『사회관념상 무죄를 선고한 1심이 이해는 되나 액수가 적다하여 죄가 안 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원심을 깨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뇌물에 대한 해석은 ▲범죄 구성 요건상 당사자가 금품을 요구했거나 안 했거나 또 교부방법이 직접이든 제3자를 통했든간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으며 ▲교장이 직원들의 후생을 위해 받은 찬조금까지도 수회 죄로 규정한 해석을 해 왔는데 최근 판결에 나타난 뇌물죄의 해석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거나(김연준·차균희씨 사건) ▲사회관념상 뇌물로 보기에 적은 액수 ▲뇌물로 보기에 미흡하다(전 김천 세무서장 문병환씨 사건)는 등이 뇌물의 범주 안에 들지 않도록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 이병용씨는『뇌물은 인간의 경제적·사회적인 모든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금품·향응·정사까지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한승헌 변호사는『법은 선입견없이 재판을 하도록 요구하고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록 잠재적이고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판결 당시의 분위기도 작용하는 듯한 인상』이라며 하급 관리 등에 대해서는 금전거래만 있으면 대체로 뇌물로 인정이 되는 경우에 반해 저명인사의 사건의 경우 그 액수가 상대적으로 커도 뇌물로 인정이 안 되는 것은 납득가지 않는 현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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