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영화법 개정 여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60년대 후반기부터 보여 온 영화산업의 전세계적인 퇴조현상이 각기 그 나라의 영화정책에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예술로서 간주할 때 한나라의 영화계가 거의 완전히 외국영화에 침식당해 숨통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영화다운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첫째로 우리는 당국의 영화에 대한 정책적「컨트롤」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난 2월 문화공보부가 영화법을 개정하면서 그 근본적인 취지가 그『우리 영화계의 누적된 부조리를 발본색원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영화계는 물론 일반영화「팬」들도 우리 영화계가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맞으리라는 커다란 기대를 가졌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영화법개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번에 이같이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은 새로운 영화법이 영화발전을 위한 갖가지 부조리를 제거하는데 있어서 당국 스스로가 앞장설 것을 확약했기 때문이었다.
개정영화법의 주요골자를 보면 첫째 영화산업의 영세성을 배제하기 위해 영화업자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둘째 외화수입권을 국사영화 제작자에게 부여함으로써 국산영화를 보호 육성하도록 하며, 세째 국산영화진흥을 위해 외국영화상영을 제한하고, 네째 영화배급협회를 설립, 단매업자의 횡포를 배제하며, 다섯째 영화진흥공사를 조합에서 승격, 업자로부터 분리시켜 우수대작 영화를 제작토록 하며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원체제를 갖추도록 한다는 것 등이다.
물론 이러한 개정영화법의 주요골자가 당초 목적한바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적어도 지난 1년 동안 우리 영화계는 바람직한 방향에로의 변화를 보였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기업으로서의 영화나 예술로서의 영화나 오히려 작년에 비해 후퇴한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현상을 영화법개정과 연관지을 때 결국 영화법개정이 불가피했고 개정취지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만한 것이었지만 개정영화법의 전체적인 흐름이 영화계의 실정과는 다소의 거리가 있는데다가 법 운용의 묘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가령 영화기업의 영세성을 배제하기 위해 군소업자의 등록난립을 못하게 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대명제작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져 차라리 양성화한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또 국산영화 3편 제작에 1편의 외화수입「코터」를 배정토록 한다는 새 규정은 이 규정의 본래목적, 즉 국산영화를 보호육성하고 수준을 높인다는 목적과는 달리 단순히 외화수입을 위한 저질국산영화의 졸속 양만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역시 국산영화관객을 외화「팬」으로부터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스크린·쿼터」제(연간상영일수의 3분의 1이상 국산영화상영 의무화)도 국산영화의 수급이 원활치 못한데다가 영화업자와 공연장경영자가 관객 없는 국산영화 보다는 외화를 중시하는 경향을 계속 보임으로써 지켜지지 않았다.
「스크린·코터」제의 보다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개정영화법은 그 30조에서 『이 규정을 위반했을 때 그 공연자의 허가청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시킬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벌칙도 마련하고 있으나 거의 모든 공연장이 「스크린·코터」제를 준수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조처를 받은 공연장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개정 영화법이 주요골자로 내세우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이 실제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단순히 법 그 자체에만 맹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자세가 아직까지는 그러한 개정 영화법의 근본취지를 정직하게 수용할 만큼 성숙돼 있지 못한데다가 영화인들 스스로가 영화를 단순한 상품이상의 어떤 예술작품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아무리 줄어든다 해도 영화는 존속해야 한다』는 일부 영화예술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영화존재의 당위성이 인정된다면 영화인의 예술적 자질을 성장시켜 가면서 피차가 법 자체의 결함을 스스로 보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함께 우리나라 영화발전을 위해 진력하는 길만이 새해 영화계에 기대를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정규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