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지표 일제히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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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뉴욕=심상복 특파원]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들이 모조리 나빠졌다. 미국 경제를 좌우하는 소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소비심리는 크게 위축됐고, 실물경제를 나타내는 산업생산은 둔화됐으며, 경상적자는 큰 폭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조기에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1941년 이래 가장 낮은 연방기금금리(1.25%)가 오는 5월까지 최고 0.5%포인트 인하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미시간대학의 소비자체감지수는 3월에 75포인트로 지난달 말의 79.9포인트에서 크게 떨어졌다. 이는 92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실물경제 흐름을 알려주는 경기지표인 산업생산의 증가세도 둔화됐다. FRB는 지난 2월의 산업생산이 전달에 비해 0.1% 증가하는데 그쳤다고 이날 발표했다. 1월에는 0.8% 증가했다. 경기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동차와 부품 쪽의 하락폭이 2.4%에 달했다. 이 부문은 지난 1월 4.5% 증가했다. 반면 전기.수도와 광업부문은 상대적인 호조를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설비가동률은 75.6%를 기록, 전달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 같은 설비가동률은 18년래 최저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그만큼 기업들이 설비투자에 나설 유인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브리핑닷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팀 로저스는 "과잉설비는 기업의 설비투자와 경제성장에 지속적인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재고도 9개월 연속으로 증가했다.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1월 기업재고는 전달보다 0.2% 늘어난 1조1천4백억달러를 기록했다.

역시 같은 날 노동부가 발표한 2월 생산자물가도 1% 상승했다. 특히 올 1~2월 중 생산자물가는 2.6%나 올라 80년 8월 이후 가장 상승폭이 컸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동폭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핵심(core) 생산자물가가 2월 중 오히려 0.5% 하락한 점에 주목,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더 걱정해야 한다는 상반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로프 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의 조엘 나로프 최고경영자는 "생산원가는 상승하고 있으나 경기부진으로 인해 수요가 여전히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이중고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난해 5천34억3천만달러를 기록해 1년 만에 28% 급증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특히 4분기의 적자가 1천3백69억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적자 규모는 30여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웃도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상적자가 주식시장은 물론 채권가격과 달러화에도 부담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BMO 파이낸셜 그룹의 살 과티에리 수석연구원은 "미국인의 저축률이 낮기 때문에 향후 적자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그는 경상적자 확대가 '미국의 고질병'이라면서 "외국 투자가들이 막대한 양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상환하는 일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향후 미 달러가치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유로에 대한 달러가치는 지난주 반전되기는 했으나 올 들어 이미 4%가량 떨어진 상태다.

한편 리먼 브러더스.JP 모건.메릴린치 및 HSBC 등 주요 금융회사들은 FRB가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리먼 브러더스는 5월까지 금리가 0.5%포인트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설명>
한 선물중개인이 13일(현지시간)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주가가 모처럼 급등한 덕분에 동반상승한 S&P지수선물을 거래하기 위해 손짓을 이용해 호가(呼價)를 하고 있다. 하루 뒤인 14일 발표된 미국 주요 지표는 줄줄이 악화됐지만 미국 주가는 이날도 소폭 상승했다. [시카고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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