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화에 질식당하는 한국 영화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금년 하반기가 시작된 지난 7월 이후 우리 나라의 극장가는 단 한편의 국산영화(신상옥 감독의 『이별』)만이 1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으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 구미의 「리바이벌」영화와 중국·「홍콩」계통의 무술 영화가 완전 석권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영화산업의 사양화라는 전 세계적인 현상과 관계없이 아직도 구미 여러 나라에서는 예술성을 띤 우수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는 최소한의 문제작도 나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장가까지 「리바이벌」영화나 흥미 위주의 무술 영화에 의해 침식되고 있음은 심각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7월 이후 서울 시내 11개 개봉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는 모두 52편(본사 조사)-. 이 가운데 신작 외화는 금년도 「아카데미」작품상을 수상한 『대부』를 비롯, 불과 7편(13%)뿐이며 국산 영화는 15편(29%). 나머지 30편 중 21편(40%)은 「리바이벌」외화와 9편(13%)은 무술 영화다.
물론 영화 가의 이러한 현상이 금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리바이벌」영화의 경우 작년부터 시작된 영화 당국의 외화 사전 실사 심사제도는 사실상 「리바이벌」외화 「붐」의 촉진제가 되었고 그 때문에 1년에 4차례 있는 외화 「쿼터」배정 때가 되면 12편의 수입 허가 외화 가운데 50% 내외는 「리바이벌」영화였던 것이다.
즉 외화의 사전 실사 심사 제도가 시작되면서 외화 수입업자(영화법 개정 이후는 영화제작자)들은 검문이 까다로운 신작 외화의 수입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한 두 차례의 검열을 필했기 때문에 검열 등 수입 절차가 쉬운 「리바이벌」영화에의 편중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리바이벌」영화와 무술 영화의 국내 상영이 금년 하반기부터 더욱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는 까닭은 한국 영화 제작 업계의 불황으로 국산 영화 3편에 1편의 외화가 배정되는 외화 「쿼터」가 금년 3·4분기에 고작 3편밖에 배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이후 개봉극장에서 상영된 21편의 「리바이벌」영화 가운데 절반 가량이 새로 수입된 지 1년 내외 밖에 안된 「리바이벌」영화라는 사실은 우리 나라 극장가(특히 외화 전문관)가 얼마나 「프로」고갈에 허덕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지 꽤 오래됐고 그것이 다시금 영화 예술의 진미를 맛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리바이벌」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기피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국내의 3개 TV 방송국이 매주 1편씩, 멀리는 30년대의 명화를, 가까이는 50년대의 양화를 방영하고 있는 요즘 그런 영화보다 질적으로 나을 것 없는 영화들의 재수입은 외화 낭비가 아니냐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가령 우리 나라 영화의 수준이 중국이나 「홍콩」의 수준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일반적 평가가 옳은 것이라면 왜 우리영화의 수출 가격은 최고 5천 「달러」가 고작인데 그쪽 무술영화의 수입 가격은 최저 3만 「달러」에서 최고 10만 「달러」까지로 치솟아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 업자간의 무분별한 수입경쟁으로 배급회사의 본래 수출가격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수입해 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리바이벌」영화는 아니지만 작년의 『러브·스토리』나 금년 『대부』의 경우는 국내에서 수입가격을 올린 좋은 예이며 「홍콩」의 국제적인 「스타」이소룡이 사망한 후 그가 주연한 여러 편의 무술영화에 수입 경합이 붙어 수입 가격을 스스로 치솟게 한 일 같은 것은 반성해야 할 점 같다.
영화를 즐겨 본다는 김현(문학평론가) 오규원(시인) 이문구(소설가)씨 등은 『우선 이소룡 이라든가, 왕우가 주연하는 무협영화는 재미가 있어서 만화 보는 기분으로 꼭 보게된다』면서 『그러나 한국영화가 이 같은 만화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화조차 제작해낼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국내 극장가에서의 무술 영화 「붐」을 타고 국내 영화계에서도 무술 영화 제작에 안간힘을 쓰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성과는 아직 미지수. 고액의 외화를 낭비하여 수입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국내 영화계에서의 효과를 감안, 어떤 제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뜻 있는 영화인들의 한결같은 여망이다. <정규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