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학교 숙제는 '쥐 잡기', 거리엔 장발 단속 … 일기로 만난 70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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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골 소녀 명란이의
좌충우돌 서울살이
조호상·김영미 글
김효은·강부효 그림
사계절, 65쪽, 1만2800원

1974년 9월 3일. 이 책의 주인공 명란이가 쓰는 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일기에 따르면, 마을에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새마을 노래’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잠이 깨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쥐 잡기’ 숙제를 받아오고, 아주머니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가족 계획’ 교육을 받는다. 75년 2월 23일, 명란이가 큰언니를 찾아 서울로 옮겨오면서 일기 속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파트, 명동 거리의 장발 단속, 전교생 앞에서 열리는 반공 웅변대회…. 당돌하고 호기심 많은 명란이의 일기 속에 70년대 한국 사회의 다채로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시골 소녀…』는 사계절출판사가 2009년부터 발표해온 ‘역사 일기’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신석기시대 한강변에 살던 씨족 아이가 쓴 일기 『곰씨족 소년 사슴뿔이, 사냥꾼이 되다』에서 출발해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 시대 등 모두 10명의 어린이가 쓴 일기로 완간됐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생활사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어린이 역사책의 진화를 이끈 시리즈로 주목할 만하다. 김남중·박상률 등 동화작가와 각 시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이 팀을 이루어 일기글과 정보글을 맡아 썼다. 복식과 음식·건축 분야 각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친근한 느낌의 삽화도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동안 역사책은 정치·사회·경제사에 큰 비중을 두어 어린이들이 자신과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끼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어린이 일기라는 형식이 발휘하는 힘은 의외로 크다. 각 시대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역사 속 또래 인물에 공감하게 한다. 부모가 함께 봐도 좋을만큼 완성도가 높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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