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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균형(Rebalancin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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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새해는 밝은 경제 전망과 함께 시작됐다. 아직 맑은 햇살은 아닐지라도 세계경제는 위기 이후의 오랜 침체에서 점차 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이 모두 상승 국면을 이어가고 중국도 지난해보다는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경제도 회복세로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3.9%, 한국은행은 3.8%로 예측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세워 회복의 불씨를 살리고 잠재성장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해 새해 기대감을 더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단순히 경기순환적 회복세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 내수 활성화를 세 추진축으로 제시했으나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 각 부문 간 ‘재균형(rebalancing)’을 이뤄내야 중장기적 활성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대외환경부터 보자. 이제 막 시작된 세계 경기의 상승 국면은 적어도 향후 3~4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지속됐던 미국의 양적완화가 점진적으로 마감되고, 아마도 내년 초부터는 연준이 정책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미 시장금리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양적완화를 지속해 확실한 디플레 탈출과 엔화의 추가 하락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3년간의 대외환경의 큰 흐름은 해외수요 증대, 국제금리 상승, 엔화에 대한 원화 절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 흐름을 잘 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에 휩쓸려 버릴 것인가에 따라 향후 3~4년 한국 경제의 성과가 정해지게 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유럽에서는 민간부문의 부채 축소(deleverage)가 진행돼 왔다. 이로 인해 경기 침체가 지속됐으나 이제 어느 정도 부채 조정이 이뤄져 조금씩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위기 이후 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가계와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민간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공기업이 늘고 있다. 향후 시장금리가 오르게 되면 이들의 취약성은 더 깊어져 자칫 가계부채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해외경기가 좋아지는 향후 수년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고 공기업 부채도 감축시켜 놓아야 이후 지속적 성장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정이 진행되는 동안 민간소비와 공기업 투자가 위축돼 총수요 부족으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구나 원화절상이 수출경쟁력을 위축시키면 세계경제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세는 부진할 수 있다.

 따라서 관건은 가계와 공기업 부문의 부채조정을 유도함과 동시에 경제의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기업과 정부부문에서 당분간 총수요를 확대시켜 주어야 한다. 특히 그동안 크게 늘려온 민간기업의 저축을 투자로 연결시키는 것이야말로 현재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과제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업부문의 과다 부채에서 비롯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문의 부채 조정이 이뤄짐에 따라 기업 투자가 크게 위축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빠른 회복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가계부문과 정부부문에서 부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계부문에서 부채조정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며 기업부문에서 부채와 투자를 늘려주지 않으면 경제회복세가 위축되게 된다.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규제혁신뿐 아니라 이들이 투자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거시환경 조성이 필요하며 결국 경쟁적인 환율, 임금, 지대, 금리 수준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내수산업인 서비스업의 발전도 결국 국민들의 소비여력이 늘어나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의 거시경제 정책은 당분간 더 완화적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 활성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고착화가 되기 쉽다. 이미 우리나라 부동산가격은 소득수준에 비해 너무 높아 이를 부추길 경우 구조적 취약성이 더욱 깊어져 중장기적으로 투자와 소비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제의 정상화를 통한 거래 활성화는 필요하나 가계부채를 확대시키는 금융규제 완화는 절제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창업뿐 아니라 기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을 크게 활성화해 취약한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경영혁신을 유도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이와 관련한 신규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경제혁신과 잠재성장력 제고의 핵심적 과제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