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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에 미친 중동전의 충격파-미·서구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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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동전은 전쟁 당사국들은 물론 미·소 두 후견국에도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했다. 미국-서구관계의 경우 중동전은 그 동안 외교적 술어 속에 감춰져 명확히 노출되지 않았던 견해차를 부각시켰다. 국방·경제면에서 미국과 서구간의 일체성을 강조, 「신 대서양현장」을 마련하려던 미국은 이번 전쟁이 촉발한 쌍방간의 견해차로 서구로부터의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소련 안에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동서화해에 불만을 품어 오던 독수리파들의 득세 기미가 보이고 있다고 공산권전문가 「빅토르·조르자」씨는 보고 있다. 제4차 중동전이 몰고 온 양대 후견 세력 내부의 심각한 충격파를 분석해 본다.
소련군의 중동파견 정보를 구실로 비상령이 내려졌다가 해제된 다음 미국정부는 서구동맹국의 대부분 특히 서독을 지칭하여 『미국의 조치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미국을 고립화시켜 결국 대서양동맹관계에 금이 가고 서구 주둔 미군과 무기비축의 감축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전례없는 비난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서구 국가들도 긴급 소집된 「나토」 각료이사회에서 미국의 일방적이고도 불투명한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다.
서구의 대미 비협조 태도 특히 서독이 미국의 「이스라엘」 무기공급에 대해 서독 영토이용을 거부하고 무기수송선의 서독항구 기항을 금지한 것은 물론 석유 「에너지」의 숨통을 쥐고 있는 「아랍」제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것이었지만 이 바탕에는 「유럽」인의 자주성과 대미 불신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데 문제가 있다.
미-서구관계는 「유럽」공동체 (EC)의 확대, 「닉슨」「브레즈네프」의 밀월 등을 요인으로 오래 전부터 『거북한』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유럽」 공동시장 (EEC)을 중심으로 한 「유럽」 공동체의 확대는 미국에 대해 우선 하나의 거대한 경제적 「라이벌」이었다.
EEC 역외 국가에 대한 공동관세장벽이라든가, 미 농산물 수입에 대한 제한 조처, 「유럽」통화강세에 따른 「달러」화의 상대적 가치 폭락 등은 EEC에 대한 미국의 가장 큰 불만요소였다.
서구 측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미·소 화해도가 짙어지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아 왔다. 미·소의 이익이 서로 일치한다면 언제나 「유럽」의 이익을 희생하고라도 타협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 미군 비상령은 하달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NATO 동맹국에 통고함으로써 긴급 소집된 NATO 이사회에서 미국은 격심한 반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이 모든 핵 기지에 대해 비상령을 내릴 만큼 실제로 사태가 심각했다면 최악의 상태까지 예상했을 터에 「유럽」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너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에 반발한 것이다.
이는 미국이 「유럽」주둔 미군을 비상사태에 대비한 전체병력의 일환으로 간주하는데 반해 서구 측은 이를 「유럽」 방위목적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는 양측의 견해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묘하게 얽힌 미-「유럽」관계를 다시 미국의 영향아래 결속시키려는 미국의 정책이 금년 초 「키신저」에 의해 발표된 신 대서양 헌장 구상이다.
당시 「키신저」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종래의 미-「유럽」관계는 새로운 단계에서 재조정돼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제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국을 제외하고 서구의 거의 모든 국가가 미국의 신 대서양헌장이라는 것이 서구의 군사력 대미의존을 구실 삼아 궁지에 처해 있는 미국의 통화·대 EEC 무역문제를 정치적으로 일괄타결, 계속 미국의 손아래 묶어 놓으려는 계획이라고 처음부터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또한 이번 미 「유럽」불화표면화의 계기가 된 중동전에 대한 양측의 이해도 엇갈리고 있다. 석유 「에너지」의 85%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서구제국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석유자본을 배제하고 산유국과 직접 교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즉 미국의 석유자본이 중동유전에서 계속 특권을 지니고 석유의 수송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데 대해 서구가 직접 유전의 개발이나 합작사업을 벌이기로 희망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에서 서구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동조한다는 것은 석유 「에너지」확보에 커다란 손실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 없다. 따라서 서독이 미국의 「이스라엘」군사원조에 자국 영토 이용을 거절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석유자원 확보문제로 「아랍」측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이러한 입장은 아울러 군사적 후견국인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부딪쳐 곤경에 처해 있다. 국무성의 서구 동맹국 비난성명에 이어 「닉슨」 대통령까지 『미국이 중동전 해결을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유럽」제국은 올 겨올 중동석유 공급이 중단되어 얼어죽었을 것』이라는 야유에 가까운 노골적인 표현으로 서구의 미 정책 이탈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어 미-서구관계의 재조정은 앞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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