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의 무기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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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중해에서 미·소 함대간의 해전이 얼어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 같은 전율적인 가정은 결코 최근의 중동전쟁이후 전해지고 있는 미·소 함대의 지중해 항진사태만을 가지고 제기된 질문은 아니다. 그것은 실로 약 3년 전 소련의 지중해 함대가 강화되면서부터 서방전략가 등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던 말이다.
그 이전 지중해는 몇몇 주변국가의 해군력을 제외하고서는 흡사 주「유럽」미 해군 제6함대의 배타적 점유 호수처럼 간주돼 왔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에 종지부가 찍힌 것은 이미 오래 됐으며, 특히 중동사태가 격화되면서부터는 소련의 지중해함대의 존재가 새 위협의 요소로 등장했었다.
오늘의 국제정세를 놓고 볼 때 설마하니 미·소 함대가 맞부딪쳐 해전을 벌이게 되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에 이룩된 미·소간의 평화공존 기운으로 보나, 또 동방에서 소련이 직면하고있는 위협이 미국보다도 중공 쪽에서 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미·소의 해전은 그 자체가 곧 제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되리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그 같은 가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중해에서의 미·소 함대의 대치는 중동전쟁의 성격이 다름 아닌 미·소 대리전쟁, 또는 이들 양국에 의한 무기지원경쟁의 양상을 다시금 명백히 드러내고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이제 1주일 째에 접어든 중동전쟁의 양상은 「키신저」미 국무장관의 대소경고, 미·소의 공공연한 무기공급개시, 미·소 함대의 대치 등 제반상황으로 미루어 점차 미·소간의 직접적인 대결의 가능성마저 노정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1967년의 「6일 전쟁」이래 소련은「이집트」와 우호 협조조약을 체결(71년5월27일)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1970년까지 「아랍」제국에 준 군사원조는 약45억불에 이를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반면 미국이 「이스라엘」측에 준 원조도 약3억불에 달한다. 이처럼 미·소 양국은 서로 긴장완화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경주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중동전쟁의 씨를 뿌려왔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계속중동사태가 악순환 해온 까닭도 실은 이 같은 강대국의 중동자국에 대한 무기지원경쟁 때문이다. 「6일 전쟁」이래 중동관계제국의 장비가 그때 현상에서 동결되었더라면 이번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7년11월22일 강대국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6항목에 달하는 중동평화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결의안에서 요구한 실천항목들은 명목상의 주장일 뿐, 특히 소련은 「6일 전쟁」에서 파괴된 「아랍」측 군비재건에 전면 협조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 명백히 나타났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선제공격을 할만큼「아랍」측의 균형적 능력을 키워줬었다.
따라서 중동전쟁은 중동제국에 대한 무기지원경쟁의 중지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모처럼 감돌기 시작한 미·소간의 평화공존과 세계적 긴장완화가 중동사태 때문에 깨지는 일이 있다면, 그 책임의 중요한 부분은 미·소양대국이 져야할 것이다. 또 이 기회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강대국간의 긴장완화가 있다하더라도 세계에는 여전히 국지전의 가능성이 있음을 이번 중동전쟁이 가리켜 주고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세계의 모든 강대국들은 비단 그들간의 긴장완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에 걸쳐서 모든 국지전의 돌발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명분, 어떠한 이유에서든 지간에 중동전쟁 상대국들에 대한 미·소의 무기지원 경쟁이 즉각 중지되기를 인류평화의 이름으로 단호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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