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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제자 박병래>|<제32화>골동품비화40년(11)-붕어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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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골동을 사러 다니는 상인인 이른바 매출이 한참 활개를 칠 때는 방방곡곡을 누벼 어느 촌구석이고 발을 디디지 않은 데가 없다는 얘기는 앞서 말한 와 같다.
공주의 김갑순씨는 철도의 개통으로 대전이 요지가 될 것을 내다보고 그 넓은 대전벌판을 사들여 마침내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도록 총독부에도 작용하였던 충청도의 갑부였다.
하루는 공주의 김씨 집에 매출꾼들이 닥친 모양이었다. 마침 주인 김씨가 외출중인 것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하여간 문갑 위에 놓인 필통 하나를 팔라고 부득부득 졸랐더라고 한다. 워낙 부호인지라 안에서 그리 용돈이 아쉬울 정도는 아니겠으나 아무튼 하도 잔곡히 졸랄대는 바람에 귀찮아서 팔아버렸다.
귀찮기도 한데다가 그리 중요한 물건이지 미처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그 필통이 없어진 것을 알고 주인이 부랴부랴 대전역까지 쫓아와서 막 기차를 타려던 이들에게 돈을 도로 내놓고 물건을 찾아갔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 당시 매출꾼들은 지방에 내려가서 물건을 사면 그대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다. 그들만이 통하는 말로 괜찮은 물건을 손에 넣으면 붕어사탕이라고 했다.
만약 붕어사탕을 샀는데 주인이 마음이 변해서 무르자고 하면 허탕을 치니까 줄행랑을 놓는 것이다.
그때 매출거간노릇을 하는 사람은 주로 서대문 밖의 영천이나 돈암동 일대의 산에 모여 살았다. 보통 지방에 내려가게 되면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쫙 퍼지게 마련이다. 한 30원을 주고 물건을 훑으러 가는게 보통이다. 그러니까 여관비를 빼고 그럭저럭 1, 2십원 바라보아야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개중에 붕어사탕을 물어오면 그래도 횡재를 만나는 셈이겠으나 어느틈엔가 좋은 물건은 고급거간이나 좌상이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그때 내가 상대하던 매출거간도 하난 둘이 아니었지만 대개는 낯이 익어서 접촉이 잦았다.
푸대에서 꺼내는 물건은 대개 마음에 드는 게 없지만 그래도 눈에 번쩍 띄는게 있으면 냉큼 사다가 양잿물을 탄 물 속에 넣고 끓인다.
다시 물에 헹구어서 그야말로 희한한 물건이면 머리맡에 놓고 자다가 며칠째 한밤중에 일어나 전등불에 비추어 보고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었다.
여담이겠지만 요즘은 골동을 수선하는 기술도 예전보다는 엄청나게 진보해서 언 듯 보면 조금치도 흠이 없는 물건처럼 고쳐 놓는다.
내게 진사 병이 하나 있는데 그 발색이 아주 좋아 깨어지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귀중한 물건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한데 주둥이가 완전히 뭉턱 나가버려서 비슷한 크기의 병을 사서 주둥이를 잘라 갖다 붙였는데 언뜻 식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고치는 기술도 발전했거니와 그릇을 씻는 방법도 아주 근대화한 셈이다.
요사이는 양잿물을 쓰지 않고 「옥시풀」을 30% 탄 용액속에 담가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그러면 양잿물에 삶은 것보다도 더 말끔히 씻겨져서 제모양이 드러난다.
한데 이 방법이 좋기는 하나 분청 같은 것은 물건 자체의 빛도 죽어서 지워지거나 색깔이 변질하는 수가 있다. 분청 가운데 특히 계룡산 요의 제품은 겉의 유약이 엷게 발라져서 그 속에 그린 그림이나 화장토가 쉽사리 변질된다.
매출거간꾼들의 교묘한 재간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 값나가는 도자기를 대개는 헐값에 배내왔다.
사기그릇이 값이 나간다는 소문은 비교적 뒤늦게 시골사람에게 알려졌지만, 그래도 우리네 촌락에는 원래 보수성이 드세어서 장사꾼이 둘이 닥쳐도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방식이 하나 있었다.
시골에 가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로 어르고 달래어서 그집 사람이 전세의 보물로 생각하건, 혹은 장독에 놓아두어 얼어터진 것이건 마루에 사기그릇을 죽 늘어놓게 한다는 것이다.
그중 마음에 들고 제일 나은 것은 제쳐놓고 엉뚱한 것부터 값을 매겨간다. 이것은 얼마, 저것은 얼마 하면 값을 부르는데 제일 못생기고 쓸모 없는 것을 가령 10원 불렀다면 그보다 나은 것은 7원, 5원하는 식으로 값을 불러가다가 정작 사려고 눈독을 들인 물건은 1원으로 낙착을 시키는 식이다.
시골사람이라도 만만치는 않다. 비록 장독대에 놓아두어 얼어터지기는 했을망정 대대로 내려오는 귀물인데 요즈음 이렇게 됐다는 둥, 하여간 호락호락 내놓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해서 판다거니 안판다거니 하게 되면 주인 편에서도 그것이 참으로 대단한 물건인줄 알고 한번 더 크게 버텨본다.
장사란 우선 못 믿을 것이라는 생각과 전세의 물건이면 숟가락 하나라도 돈으로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조상의 때가 묻은 것이라는 보수적인 생각으로 선뜻 이를 내놓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장사꾼이 『에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다 안된다니 저거나 주슈』해서 마루 위에 죽 벌여 놓은 것 중에 그중 나은 물건을 아가 부른 1원 위에 1원을 더 얹어 주고 사게 된다.
더 약은 매출꾼은 아무 짝에도 쓸데없고 예컨대 그 얼어터진 것과 같은 따위의 항아리를 한 1, 1원 가량 더 얹어주고 선심쓰는 척하고 사버린다. 그리고 나서는 밑졌느니 어쩌니 하면서 투덜대다가 마루에 내놓은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가리키며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저것은 덤으로 하나 얹어 주슈』하는 식으로 능청을 떠는 것이다.
시골사람이란 조금 완고한 구석이 있기는 하나 한번 마음을 풀고 나면 그야말로 유순하기 짝이 없다. 개중에 조금 마음씨가 단단한 사람은 조금 더 버텨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용 그대로 가져가라고 주어 보내기가 십상팔구이다.
몇 푼 더 받아 보았댔자 몇 십전에 그칠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붕어사탕이라는 것이다. <계속> 【박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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