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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 곡가 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경제 정책 목표와 그 집행 수단 사이에 상충이 생기는 경우 그 득실을 비교하여 득이 많은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실제 정책면에서 가장 존중되어야 할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정부가 74년도 예산안에서 양특의 장기 차입 한도를 무려 1천7백억원으로 잡은 이유는 오로지 곡가를 안정시켜 물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일렴 때문이라 하겠으나 이는 너무도 단순한 산술적 계산의 범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장기 차입을 1천7백억원으로 계상 했다면 그것은 곧 발권을 뜻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발권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덮어두고, 즉물적인 곡가 상승만을 막겠다는 것은 정리에 닿지 않는 일이 아니겠는가. 곡가를 올려 물가지수를 즉각 올리는 것보다는 발권을 통해 수요압력을 주는 것이 물가 지수 반영율로 보아 유리하다는 계산은 너무나 단기적인 판단이다.
오히려 수요 압력이 지연적이며 전면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는 점에서 몇개 품목에 국한되는 가격 조정의 여파보다 크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까운 판단이 아니겠는가.
다음 곡가를 조정하는 경우, 생계비 중 음식비 지출 부담이 커져 여타 지출이 삭감됨으로써 총 소비는 실질적으로 억제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곡가 조정으로 오는 물가 압력은 여타소비 억제로 오는 상곡 압력 때문에 순 물가 압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반면 발권과 저 곡가는 총수요의 가중 압력과 저 곡가에 따른 실질 소비 증가 압력이라는 이중의 물가요인을 형성하는 것임을 주목해야한다.
물론 생계비 압력에 따른 임금 인상 압력이 작용하게될 것이라는 2차 적인 측면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가 조정이 물가 압력 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밀가루 보조금 지급의 경제적 타당성은 국제시세로 보아 이제 찾기 어렵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을 위해 1천7백억원이라는 방대한 규모의 발권을 선택하는 경우, 식량의 증산 및 자급이라는 당면 과제와도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맥 가격이 한「톤」에 86「달러」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이제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차 보조를 계속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역리를 어떻게 해소하려는 것인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늘날 소맥의 국제 가격은 한「톤」당 2백「달러」선을 넘음으로써 현재 정부가 소맥 수입 업자에게 주고 있는 보조금은 기준 가격의 무려 1배반이나 되고 있다.
이러한 무리한 소비 보조 정책으로 말미암아 밀가루 값이 가축 사료 값과 맞먹게되자 일부업자들은 밀가루를 가축 사료로 이용하는 일조차 없지 않다고 전문되고 있음을 당국도 모를 이는 없을 것이다.
또, 발권을 불사하면서까지 맥류가 격을 낮춤으로써 상대적으로 쌀값을 억제한다면 농민들에 대해서는 가장 큰 증산 유인을 삭감시키는 결과가 될 뿐만 아니라, 식량 소비를 촉진시켜 수급 불균형도를 악화시킬 것도 또한 자명하다.
더우기 식량 수입 사정은 가격면에서 뿐만 아니라 수입 조건에서도 날로 불리해지고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우리의 외환 사정으로 보아서도 식량 소비 억제와 식량 증산책은 다같이 강력히 추진되어야함이 마땅한 정책 논리일 것이다. 국제적으로 곡류가격이 2배 이상 올랐는데 유독 우리만이 곡가를 올리지 않고 발권으로 소비 보조까지 하겠다는 것은 식량 증산 및 소비 억제를 강력히 추진해야 할 우리의 실정으로 봐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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