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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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살이 옷들을 정리해 넣고 가을·겨울옷들을 꺼내 거풍을 시키려고 바구니에 소복이 쌓았다.
『엄마는 옥상에 올라간다』하는 나의 말에도 꼬마는 나두 나두 하고 따라 오른다.
빨래를 널 때나 걷을 때 뿐이지만 옥상에 올라가는 걸 엄마도 즐기는 데 애들도 좋은 모양인지, 출입통제구역인 옥상에 엄마와 같 이가 아니면- 올라가기를 퍽 들 좋아한다.
빨래를 너느라고 목을 쳐들면 저 멀리 탁 트인 하늘. 지평에 걸려 있는 흰 구름. 나는 갑자기 갈증을 느낀 듯 시원한 하늘을 마시고 싶다.
빨래를 널 때 푸른 하늘, 하얀 햇볕, 빨래를 걷을 땐 고즈넉한 보랏빛 황혼.
때로 저녁 설거지 후에야 빨래를 걷을 땐 총총한 별밤을 혼자 마주하게 되어 일컬어 생활 속의 낭만이라 하는 건지.
지난 봄 농 속에 챙겨 넣어 두었던 옷들이라 쾨쾨한 냄새도. 혹 벌레라도 사라지라고 빨랫줄에 줄줄이 널었다.
그런데…나는 줄에 널던 큰 딸 아이의 저고리 밑단에서 뭔가 잡히는 걸 느꼈다.
『뭘까?』싶어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주머니에 난 조그만 구멍을 통해 지난 겨울 지운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동전 한 닢과 소꿉용 밥주걱이 나왔다.
나는 문득 어미를 떠나 시골 할머니에게 내려가 있는 큰 딸 아이의 고독감이 뭉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여섯 살 박이 지운이는 상경하셨던 할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내려 간지 어언 두 달이 가깝다
며칠후면 할머니랑 상경하리라는 소식을 생각하며 동전과 밥주걱을 손바닥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다시 옷가지를 줄에 널어 나가기 시작한다. 드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을은 참으로 축복 받은 계절이다.
서정자<서울 서대문구 응암동 500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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