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제도의 사회 정책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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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로자들의 심신장해와 노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복지 연금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됐을 때, 근로자들은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내용이 밝혀진 국민복지 연금제도에 접하고 과연 기대하던 사회보장제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사회보장제도의 강화야말로 자본제 경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데에는 원칙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자체가 근본 취지에 투철할 때에만 비로소 본래적 기능을 발휘함 수 있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발표된 연금제도는 사회보장이라는 제도창설의 근본취지에 투철하기보다는 국민저축의 동원수단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며, 때문에 국회에서 이 법을 심의할 때 이 법안이 제도의 근본취지와 진실로 부합되고 있는가를 철저히 가려내어 보완해주기를 기대한다.
우선 연금 기여율을 노사 측 부담을 합산해서 근로자 소득의 8%로 정한 근거를 철저히 따져야 할 것이며, 연차별 연금 기여금과 지급예상액, 그리고 연금기금 운영수익을 명백히 따져 근로자들이 연금기금에 실질적으로 기부행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근로자들이 연금제도의 실시로 실질적인 득을 입을 수 있어야 진실한 사회보장제도가 된다는 점에서 연금기금의 연차별 수지예상이 분명하지 않은 채 연금 기여율과 지급률을 결정해서는 아니 된다.
둘째, 일반근로자 연금제도와 공무원·군인연금제도에 차별을 두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므로 국민복지 연금제도와 공무원연금제도는 연금 기여율은 물론 지급률 및 지급방법 등이 모두 동일해야할 것이다.
발표된 국민복지 연금제도와 공무원 연금제도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가 있는데 이러한 차별대우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이 제도자체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셋째, 연금지급 시점을 60세로 잡은 것은 어떤 근거에서이며, 근로자들의 정년퇴직 연한을 무시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간기업의 경우, 55세가 정년이 되고있는데, 그렇다면 퇴직 후 5년간은 사회보장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하려는 것인가. 또 정년퇴직을 하는 경우보다 더 조건이 나쁜 중간 실업자에 대해서도 퇴직일시금을 지급하기 않고, 60세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납득할 수 없다. 비자발적인 실업의 경우에는 재취직을 정부가 보장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비자발적 실업자는 사회보장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중년에 이르러 실업 하는 경우, 재취업의 기회는 매우 제약돼 있는 반면, 생활비 부담은 부양가족관계로 늘어나는 실정을 고려할 때, 중도의 실업이야말로 가장 문제시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넷째, 이 나라의 고용관습상 여성의 경우는 결혼 전에만 취직이 가능하고 결혼 후에는 사실상 강제퇴직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들 여성근로자에 대한 연금제도 시행은 어떻게 합리화시켜도 현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여성근로자들도 그들을 만60세까지 취업할 수 있도록 보장하든지, 아니면 연금가입을 임의 선택케 하도록 하는 고려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여성근로자들은 임금상의 차별과 단기취업이라는 불리한 조건하에 있는데, 이에서 다시 연금 기여금을 내고 결혼 후 퇴직하여 60세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은 일종의 부도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다섯째,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70년에 남자63세·여자67세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날 것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 지급시점을 60세로 잡았다면, 20년 이상씩이나 적립한 원금과 그 이자가 전부 연금으로 근로자에게 되돌아 올 가능성은 적다. 더욱이 광산근로자나 앞으로 늘어날 공해산업 종사자들의 평균 수명은 더욱 낮을 것임을 고려할 때 국민복지 연금법안은 가장 보호해야할 육체노동자에게 가장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여섯째 유족연금 지급에 있어 만18세 미만에만 지급한다는 항목은 사실상 유족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뜻과 대동소이하다. 정상적인 경우 40세 이후에 자녀를 출산하는 경우는 가족계획사업의 보급과 국민수준의 향상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족 연금제보다는 사망 일시금지급제를 시행해서 유족의 재활기금으로 지급하는 방법이 근로자를 위한 길이 된다.
위에서 지적한 제 문제점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근로자들의 후생증대를 위해 마련한다는 복지연금제도의 근본취지는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법안이 다시 철저하게 다듬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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