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거래하면 최대 14조 추가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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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과속 주행 중인 환경 규제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환경 규제는 수출 기업의 새 부담으로 떠올랐다. 자동차업계는 특히 골치가 아프다. 해외에서뿐 아니라 국내에서 규제 직격탄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업체는 2015년부터 저탄소차협력금제도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를 동시에 적용받게 된다. 이에 따라 새해가 막 시작됐는데 벌써 내년 걱정을 하고 있을 지경이다.

 한국무역협회는 6일 수출기업에 환경 규제 주의보를 내렸다. 무협 국제무역원에 따르면 2012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기술장벽(TBT) 통보문 중 환경 규제는 253건에 이른다. 2011년 188건에서 35%나 늘었다. 지난해는 11월까지만 집계해도 221건에 이른다. TBT 통보문은 각국이 무역 장벽이 될 수 있는 규제의 도입을 WTO에 알리는 것이다. 선진국은 전체 TBT 통보문 중 환경 규제 비율이 24%에 달한다. 미국은 지난해 통보문의 46%(45건), 유럽연합(EU)은 38%(33건)가 환경 규제였다.

 올해 도입되는 대표적 규제는 EU의 항공기 탄소배출권거래제도다. 일종의 항공 탄소세다. 이 제도에 따라 EU 하늘을 지나가는 한국 항공기는 운항 거리만큼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고 배출권을 사야 한다.

한국 항공업계의 추가 부담은 약 120억원으로 추정(한국교통연구원)된다. 장현숙 무협 국제무역원 수석연구원은 “규제 도입으로 항공화물의 운임이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며 “화주나 수출기업은 물류 비용 상승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EU의 파라벤(화장품 원료) 사용 금지, 미국의 냉장고·세탁기 에너지 라벨 표시 요건 강화 등이 올해 시행된다.

 가장 걱정이 큰 곳은 자동차업체다. 해외 규제는 이미 충족했다. EU는 디젤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을 20% 강화(승용차 ㎞당 0.18g→0.08g)한다. 이 규제는 2009년 이전에 예고된 것이어서 국내 자동차 업체는 기준은 채웠다. 그러나 국제무역원은 보고서에서 “기술 적용으로 제품 가격이 올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더 큰 공포는 국내에서 추진 중인 ‘자동차 탄소세’다. 환경부는 2015년부터 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사면 부담금을, 저탄소차를 사면 지원금을 받는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환경부 초안에 따르면 최대 700만원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중산층이 많이 타는 현대차 쏘나타도 차값과 별도로 150만원(2017년 기준)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출량 등을 감안하면 앞으로 신차 구매자 5명 중 3명은 부담금을 내야 한다”며 “국산차에 불리하고 수입차에만 유리한 제도”라고 말했다. 내년의 경우 국산 소형차인 레이 1.0과 프라이드 1.4는 25만원의 부담금을 내고, 이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비싼 수입차인 폴크스바겐의 제타와 BMW 320d는 5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업계의 걱정은 또 있다. 내년부터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산업계의 추가 부담은 시행 방안에 따라 적게는 4조2000억원, 많게 잡을 경우 14조원에 이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4%(2010년 기준)이나 한국의 감축 목표(2020년 기준)는 전 세계 목표의 3~8%에 이른다”며 “환경 보호는 필요하지만 규제의 영향을 면밀히 파악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숙 수석연구원은 “해외 에너지·환경 규제에 대비하지 않으면 수출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화학·자동차·전기전자 제품 수출에서 환경 규제가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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