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3월 15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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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는 화실에서 혼자 밥을 해 먹을 때면 으레 뚝배기에 된장부터 풀어 불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는 칼 하나 들고 문 밖으로 나갑니다. 마당에 나가서 고개를 숙여 맨땅을 두리번거립니다. 봄나물을 찾기 위해섭니다. 쑥.냉이.달래.비름.씀바귀 중 하나만 골라 파오면 됩니다.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혼자 먹을 양만큼 조금 뜯어서 된장국에 넣습니다. 많이 뜯어다 놓으면 되레 싱싱한 나물이 시들어버립니다. 맛이 그만입니다. 겨우내 맛보지 못한 봄 향기가 입가에 그윽합니다.

아랫담 할머니도 밤나무 언덕에 가끔 올라오셔서 나물을 뜯습니다. 나물을 뜯다 말고 담배를 피면서 옛날을 회상합니다. 며느리는 오늘 저녁을 냉이국으로 하려나 봅니다. 아이들은 따뜻한 언덕배기에서 꽃놀이를 합니다. 평소 일하며 쉬고 개가 똥 누던 마당이 신선한 나물 저장고입니다. 보잘 것 없는 맨땅이라서 풀씨가 자리잡고 썩은 거름도 스미고 지렁이 같은 버러지가 살아 드디어 봄나물까지 피어납니다.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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