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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동완|U대회대표단임원 동완 교수 방소 수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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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회식>
배구선수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끝마치니 벌써 저녁 7시에 시작되는 개회식장소인「레닌」중앙경기장 즉「루즈니키」로 떠날 시간이다. 우리선수단의 선두에 설 국기는 주최측에서 갖추기로 되어 있으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단기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마르카로므」씨의 의견에 따라 기수가 가지고 가기로 한다. 오늘까지의 모든 경위를 생각하여 잘못 될 리는 없으리라고는 믿어지나, 그래도 선두의 참가국 표지판에 어떻게 우리 국가 명을 나타냈을 지가 궁금하다.

<「쿠웨이트」다음 입장>
「버스」로 약10분 달려「루즈니키」개회식장에 도착했다. 식장인 본 경기장 밖에 있는 육상 경기장에는 이미 몇몇 나라 선수만이 와 있다. 각국 선수단의 정렬할 위치를 알리기 위해 횐 운동복에 차양이 있는 흰 운동모를 쓴 소련 청년이 두 명씩 각각 표지판과 국기를 들고 서 있다. 우리의 위치에는 분명「레스푸블리카·카레야」(리퍼블리크·오브·코리아)라고 쓴 표지판과 커다란 태극기를 들고 있다. 우리의 앞에는「쿠웨이트」, 뒤에는「루마니아」의 선수단이다.「러시아」어「알파벳」순서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시간이 되자 식장「스탠드」너머로 군악대의 군악 소리와 관중의 환호소리, 사회자의 국가 명을 부르는 소리와 뒤섞여 들려온다. 우리 선수단의 차례가 가까워진다. 드디어「스탠드」밑으로 난 출입구 어귀에 이르렀다.

<백여 민족의상 갖춘 무용>
「스탠드」에 자리잡은 관중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하고 군악대의 주악 소리가 더욱 분명히 들린다. 곡은『세계민주청년의 노래』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기억은 희미하나 1948∼49년께에 소련주최로「모스크바」의「레닌그라드」가로 쪽 교외에서 열린 각국 청년대표들의 모임을 위해 작곡되어 당시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는 나를 위시한 일본군 포로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이다.
20대의 기억이 이제 50대에 접어든 나의 뇌리에 되살아나 감개무량하다. 그 곡은 행진곡으로서 매우 경쾌하다.
잔디밭에 들어섰다. 적어도 3백 명은 넘을 것으로 보이는 군악대의 주 악은 상당히「템포」가 빠르다. 저절로 발걸음도 빨라진다.「로열·박스」가 가까워지자 강필승 총감독의 천둥소리 같은 구령이 울린다.
미리 준비한 횐 바탕의 태극선이 일제히 머리 위에서 펼쳐지고 보조에 맞춰 앞뒤편이 번갈아 나타난다.「스탠드」에서는 다시 우레 같은 박수와 환호소리가 일어난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니 지금도 가늘게 내리는 연일의 비에 씻겨 먼지 하나 없이 푸르기만 한 잔디밭 위를 지나가는 우리 선수단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극치다. 식순에 따라서 의식은 진행된다. 주최측의 인사 등등이 지나가고 소련 측의 자랑거리가 시작된다. 사방의 출입구로 소년단원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손에 손에 풍선을 들고 나타난다. 잘 훈련된 집단이다. 그들의「매스·게임」솜씨는 칭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스탠드」의 관중은 물론이고 각국 선수단 속에서도 아낌없는 박수가 그들의 퇴장을 전송한다.

<「칼린카」「템포」에 맞춰>
그 다음 순서는 민속무용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나라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구경거리임이 틀림없다. 극소수 민족까지 헤아린다면 백을 넘을 것이요, 인구 백만 이상의 민족만 해도 수십을 헤아리는 이 나라의 민속의상은 그 형태와 색채에 있어 지극히 다채롭다. 소년·소녀들이 나간 그 출입구로 이번에는 성년 남녀들이 쌍쌍으로 들어온다. 다시 그들을 환영하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관중 10만5천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 경기장을 메우기에 충분한 인원수가 동원되어 있다.
출연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이르자 무용곡이 흘러나온다. 이것은 중간에「템포」의 변화가 있는 매우 경쾌한 민요곡이다. 곡명은『칼린카』. 우리나라 가곡이라면『천안삼거리』정도로 보편적인 노래다. 처음에는 완만한「템포」로 절도 있는 동작이 계속되더니 차차 흥이 고조됨에 따라「템포」도 빨라지고 동작도 활발해진다. 그야말로 흥겨운 가곡이자 무용이다.
몇 번의 완급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흥취가「클라이맥스」이르렀을 때, 무곡의「템포」는 극도로 빨라지고 무용의 동작도 보는 사람들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빨라졌다가 멎는다. 관중의 열광 또한 최고조에 이른다. 그들이 입장할 때엔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이 나타난다. 후미에 퇴장하는 사람들은 남녀 다 40대로 보이는 상당한 연령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나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다.
관중의 흥분이 고개를 숙이려 할 때 사방에 설치된「서칠라이트」가 일제히「로열·박스」의 맞은편, 즉 정렬한 선수단 후면으로 집중된다. 이른바「카드·섹션」이 시작되는 거이다. 암혹 속에 강렬한「서칠라이트」의 광선을 받은 색채는 대낮의 그것보다도 몇 갑절 힘차게 망막을 자극한다.「유니버시아드」73의「마크」가 끝에 붉은 별이 반짝이는 붉은 뾰족탑을 빨강·초록·검정·노랑·하늘색 등 5색의 U자가 밑에서 받들고있는 형상으로 나타난다.「스탠드」의 크기만큼 그것도 거대하다. 가지가지의 형상을 그리는「카드·섹션」에 황홀한 사이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관중들『까레야』연발>
불꽃놀이 그 자체로서는 조금도 우리선수도 그렇게 신기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흥분한 분위기와 새로 발사될 때마다 고막을 찌르는 발사 음과 칠흑의 하늘에서 울리는 폭발음에 앞서 나타나는 오색찬란한 형상을 볼 때 일제히 내뱉은 소련 관중들의 탄성에 휘말려 각국 선수들도 그것을 보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때 애석하게도 나의「카메라」는 작동을 멈춘다.「필름」이 끝난 것이다.
환희와 흥분 속에 개회식은 끝난다. 들어온 출입구와는 반대편의 출입구로 퇴장한다. 출구에 이르자 관중들은 다시『카레야』를 연발하며 환성을 올린다. 다시 태극선을 펼쳐 그것에 대답한다. 관중들은 손을 뻗는다. 태극선을 달라는 뜻이다. 선두의 강필승 감독이 접어서 힘껏「스탠드」를 향하여 던진다. 뒤따른 사람들도 던진다.「스탠드」에서는 다시 환성이 터진다.
숙소에 돌아온 선수단은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나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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