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은 축제 분위기다. 증시는 엔저 훈풍을 타고 6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일본의 지난해 성장률 전망치를 1.6%에서 1.8%로 조정했다. 정권의 염원인 ‘디플레이션 탈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의 물가 상승률은 1.2%로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아베노믹스가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일본 안팎에서 들려오는 이유다.
오쿠보 다쿠지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그러나 이 같은 낙관론이 오히려 일본 경제에 독배가 될 거란 경고가 일본 내부에서 나온다. 도쿄에 위치한 경제연구기관 재팬매크로어드바이저스의 오쿠보 다쿠지(大久保 琢史·사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저 환상에 빠져 시급한 구조개혁을 실기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 경제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그는 골드먼삭스·메릴린치 애널리스트를 지낸 거시 경제 전문가다.
-아베노믹스가 성과를 보이는 것 같다는 평이 많다.
“일정 부분 사실이다. 경제 성장률 등 통계가 개선됐고, 개인 소비도 늘고 있다. 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리에 활기도 느껴진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목표인 2% 인플레이션도 달성할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을 거다. 아베 정권의 경기 부양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무슨 뜻인가.
“재정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은 모두 단기적으로는 먹혀들지만 장기적인 변화를 몰고 오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노동시장을 개혁해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아베 총리가 강조한 세 번째 화살 아닌가.
“맞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세 번째 화살에 대해선 실행하겠다고 말만 했을 뿐 아무런 실행을 하지 않고 있단 거다.”
-왜인가.
“구조조정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텐데,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하라는 요구를 못한다. 하지만 한국을 보라. 1998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단행한 덕에 경제가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도 저항은 거셌다.”
-일본 국민들은 구조조정을 겪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건가.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조만간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거라 본다. 나는 2016년께 일본이 재정위기를 겪을 거라 예상한다. 정부 부채가 너무 많이 누적되고 있다. 위기가 오면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국민들이 느낄 거다.”
-소비세 인상의 타격이 클 거라 보나.
“심각할 거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아직 임금은 본격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소비세율이 인상되면 그만큼 실질 임금이 떨어진다. 개인 소비가 크게 위축될 거다. 문제는 내년 또 한 차례 소비세가 오를 거란 거다. 그때의 충격이 더 클 걸로 본다.”
-한국 기업은 엔저를 무척 우려하고 있다.
“엔은 더 약세를 보일 거다. 미국 금리가 올라가기 때문에 달러가 더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엔저와 한국 기업의 실적은 다른 문제다. 지난해부터 엔저가 본격화됐지만 한국은 지난해 10월 사상 최고치 수출을 기록하지 않았나.”
-한국 수출 기업으로선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너무 낙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기업이 더 이상 가격으로 승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의 경우 브랜드나 제품의 질이 주요 경쟁력이다. 그래서 수출도 줄지 않는 거고. 게다가 원화는 리먼 쇼크 이전엔 더 강했다. 달러당 900원대도 경험하지 않았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엔화 역시 리먼 쇼크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건가. 앞으로 엔화가 더 떨어지고 원화가 더 오르는 게 당연하다는 건가.
“그렇다. 엔화 역시 리먼 쇼크 이후 너무 고평가됐었는데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엔화는 올해 더 떨어질 거라 본다. 달러당 110엔은 확실하고, 115엔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엔저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나.
“물론이다. 수출 기업도 도움을 받는 측면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서 필요하다(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
-엔화 가치에 민감한 미국 정부가 최근엔 엔저 정책을 용인하고 있다. 중국 경제를 견제하기 위해서일까.
“그 부분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일본 경제가 부상하는 게 아시아 경제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다. 일본에서 소비가 늘어나면 중국의 수출도 늘어난다. 정치적으로야 중국이 일본 잘 되는 걸 반기지 않겠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