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가 부끄럽다 … 사기·위조, 막가는 변호사 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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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 노원구에 사무실을 둔 이모(39) 변호사는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개인회생 사건으로만 5억6000여만원을 벌었다. 변호사 사무실 5곳 중 1곳이 월 200만원도 채 못 벌고 있다는 국세청 통계도 나온 상황에서 개인 변호사가 거둔 성과로는 독보적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이 변호사가 대리한 개인회생 신청자 수만 417명에 달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의 ‘나 홀로 호황’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게 아니었다. 이 변호사가 불법 콜센터 업자 박모(41)씨 등으로부터 개인회생 신청자의 정보를 사들인 뒤 이를 활용해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조재연)는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이 변호사를 비롯해 6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혐의가 중한 박씨 등 6명을 구속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이 변호사처럼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상에서 줄타기를 하다 범법자로 전락하는 변호사가 크게 늘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변호사 수는 2008년 314명에서 2012년 544명으로 늘었다.

 하루에 변호사 한 명 이상이 ‘피고인’이 되는 셈이다. 변호사 윤리 및 품위유지 규정 등을 어겨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를 받은 건수도 2008년 37건에서 지난해 49건으로 늘어났다.

 불법 유형은 수임비리부터 사기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7월 수원지검은 홍모(48)씨 등 변호사 7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서초동 인근에서 활동해 온 이들은 사건 수임이 어렵자 사무실에 법조 브로커들의 자리를 마련해 준 뒤 자신들의 명의를 이용해 파산·면책·회생 사건을 처리토록 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다. 조사 결과 사무실 임대료로 1인당 매달 60만원을 받았고 사건 한 건당 8만~11만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1부는 그해 11월 홍 변호사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6명의 변호사에겐 1500만~4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장모(40) 변호사는 사기죄로 수감 중인 의뢰인을 접견하면서 “현직 차장검사에게 부탁해 구형량을 낮추고 재판장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도록 해주겠다”고 속여 6억여원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의뢰인은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사기 혐의로 기소된 장 변호사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 및 추징금 6억원을 선고받았다.

 불법·탈법 변호사가 증가하는 원인은 법률시장에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라고 법조계는 분석한다. 변호사 숫자는 급증하는데 경제불황까지 겹치면서 일부 변호사가 일탈한다는 것이다. 2005년 6997명이던 변호사 수는 지난해 1만4142명으로 늘어났다. 8년 만에 두 배를 넘어섰다. 김관기 변호사는 “새로 변호사가 되는 이들 상당수가 법원·검찰·로펌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개업하는 이른바 ‘막변(辯)’”이라며 “개인변호사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데 시장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변호사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범법 사실이 밝혀져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큰소리를 치는 도덕 불감증 변호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로 조사받는 변호사나 법무사들은 대부분 ‘다 이렇게 하는데 왜 우리만 잡느냐’고 항변한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협 최진녕 대변인은 “소수의 전관 변호사, 몇몇 대형 로펌을 빼고는 다들 힘들다 보니 점점 윤리적, 법률적 문제에 둔감해지는 측면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징계 수위 강화와 함께 기대수준을 낮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려는 변호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변호사 단체에도 자정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일정한 권한을 달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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