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띄우는 편지 ③ 철학자 강신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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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는 소통의 열쇠를 상대방에게서 찾으면 힘들다고 했다. 내 안에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고, 그걸 찾는 게 열쇠라고 했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나는 소통의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먼저 물어보라고 덧붙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면 하나. 유독 피곤한 날이 있다. 그저 따뜻한 욕탕과 부드러운 음악만이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웬걸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색하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부부 사이의 대화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 우리에게도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옳은 말이다. 너무나 일에 치여 아내와 가족과 여행은커녕 대화를 나눈 기억도 꽤 오래된 것 같다. 그렇지만 이 날만큼은 침묵의 침대에 몸을 누이고 쉬고 싶다. 그래도 소통을 요구하는 아내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신을 집중하며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가 많은지 아내의 말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아내의 말은 귓가 근처에만 머물 뿐 마음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장면 둘. 불통과 소통이 사회의 화두가 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CEO가 부쩍 임직원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가지려고 애를 쓴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제 CEO가 철이 들었다고 기특했지만, 이제 힘들기만 하다. 한 주에 한 번 있는 조찬 티타임도 그렇고, 과거보다 훨씬 더 근사한 회식 자리도 그렇고, 심지어 한 달에 한 번 이루어지는 임직원 산행도 그렇다. 하지만 소통을 원하는 CEO의 소망을 쉽게 뿌리칠 수도 없는 일이다. 과거 일방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던 불통의 모습보다 천만 배나 좋은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과중해진 업무와 많은 경조사들 때문인지, 이제 조찬 티타임, 회식, 그리고 임직원 산행도 또 하나 부가된 새로운 짐인 것처럼 자꾸 느껴진다.

 방금 소통이 왜곡되는 두 가지 장면을 살펴보았다. 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분명 소통은 가족이나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공동체에서든지 필요한 덕목이다. 원활한 소통이 없다면, 어떤 공동체든 금방 와해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남편에게 소통을 요구하는 아내의 요구나 직원들에게 소통을 요구하는 CEO의 요구는 정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쉬고 싶은 남편이나 과중한 업무에 지친 직원들은 소통에의 요구를 무거운 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그건 자신들이 원하는 걸 상대방이 읽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욕탕에 몸을 깊게 담그고 쉬고 싶었다. 직원들을 과중한 업무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의 욕망 혹은 직원들의 욕망을 읽지 못했기에, 소통을 요구하는 아내나 CEO의 주장은 불통보다 더 심한 폭력으로 변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소통을 소통이란 말에 걸맞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이미 소통이란 글자 안에 다 들어가 있다. 소통(疏通)! 막힌 것을 뚫어버린다는 의미의 ‘소’라는 글자와 연결한다는 뜻의 ‘통’이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타인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을 제거하여 연결하자는 것,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자각이다. 이런 자각에 이르지 못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상대방이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상대방을 개조하려고 들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폭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 자신에게 연결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있다는 자각, 그리고 그 장애물을 없애려고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한다. 나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면, 항상 소통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니까.

 타인과 소통하려면 타인을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통이란 사랑이란 감정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직감하게 된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자신을 기꺼이 혁명적으로 바꾸도록 만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던 것 아닌가. 내가 먹고 싶은 자장면보다 상대방이 먹고 싶어 하는 스파게티를 먹겠다는 것, 내가 보고 싶은 액션영화보다 상대방이 보고 싶은 멜로영화를 보려는 것. 사랑이란 감정이 없다면, 이런 기이한 행동이 가능하기라도 하겠는가. 그래서 소통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단지 사랑의 수단으로만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스스로 점검해보도록 하자. 나는 소통하려는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가.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제 소통이란 글자가 가르쳐준 대로 실천하면 된다. 상대방과 연결하는 것을 막고 있는 내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건, 그다지 녹록한 일은 아니다. 왜냐고? 그건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장애물은 바로 ‘나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통이 완성되려면, 어느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야만 한다. 레드와인이 가득 들어 있는 잔을 생각해보자. 새로운 화이트와인을 담으려면, 우리는 잔에 들어 있는 레드와인을 기꺼이 비울 수 있어야만 한다. 레드와인을 결코 비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화이트와인을 잔에 새롭게 채울 수 있다는 말인가.

 몇 년간 우리는 ‘소통’이란 화두에 사로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소통이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우리는 2014년을 헛헛하게 맞이하게 된 셈이다. 그저 타인과 연결되려고만 안달했을 뿐, 우리는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소통’이란 글자에서 ‘통’이라는 글자보다 ‘소’라는 글자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다.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지 않고는 타인의 욕망을 마음 가득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비워내려는 집요한 노력이 없이 타자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했으니, 소통을 아무리 목이 터지도록 외쳐도 소통은커녕 불통, 나아가 폭력마저 난무했던 것이다. 2014년에는 더 이상 소통이나 불통이니 떠들지 말고, ‘소’라는 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엄숙한 명령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자. 오직 이럴 때에만 간신히 우리는 ‘소통’을 희망할 수 있을 테니까.

■ 강신주의 말말말

-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서 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힘과 보폭으로 눈길을 걷겠다는 정신. 그는 이것을 ‘진지성’이라고 부른다. ‘진지(眞摯)’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글자 그대로 ‘진짜로(眞) 무엇인가를 꽉 잡는다(摯)’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렇다. 무엇인가를 꽉 움켜잡아야 거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잡았다는 제스처만으로 자신의 흔적이 남겨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김수영을 위하여』 중에서

- 철학은 분명 여행을 닮아 있다. 그 안에는 외부로 나아가려는 운동, 그리고 다시 그 외부로부터 내부로 돌아오려는 운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는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철학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낯섦과 차이를 제공하는 학문이라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철학을 필요로 한다. 철학은 현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친숙한 생각을 문제 삼으며, 항상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선을 바꿔놓기 때문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중에서

- 페르소나를 찢어버리고 맨얼굴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페르소나를 벗고 맨얼굴로 자신과 세계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거짓된 인문학은 여러분에게 더 두텁고 화려한 페르소나를 약속할 것이다. 거짓된 인문학이 진통제를 주는 데 만족하지만, 참다운 인문학적 정신은 우리 삶에 수술 메스를 들이대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에서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강신주=1967년 경남 함양 출생.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꿔, 서울대에서 석사, 연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중과 소통하는 거리의 철학자’로 불린다. 철학적 사유를 직설적 화법으로 쏟아내는 특유의 통괘함이 있다. 중앙일보·교보문고가 공동선정한 ‘2013 올해의 좋은 책 10’에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뽑혔다. 그외 저서로 『강신주의 다상담 1~3』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장자 &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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