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8·15단폭」앞둔 크메르 기상도|빈사상태의 「론·놀」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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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초까지만 해도 「티우」정권보다는 장수할 것으로 보이던 「크메르」의 「론·놀」정권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공산군의 포위망이 수도 「프놈펜」의 4∼10㎞지점까지 죄어 들어온 데다가 앞길이 트일 전망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론·놀」정부군이 그런 대로 힘의 평형을 지켜온 것은 미군 기들의 대규모 지원덕분.
그러나 미 상원이 8월15일 이후의 「크메르」지원출격을 금지했으므로 미군이 역성을 드는 것도 그때까지 뿐이다.

<공군승리 안 바라>
비록 번복되기는 했지만 사법부에서는 「더글러스」미 대법원판사가 『지원폭격 즉시 중지령』을 내렸을 정도인 만큼 「닉슨」이 무력으로 「론·놀」을 감싸주는 것도 이제 완전히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문제는 미군기의 극성스러운 지원을 받으면서도 후퇴만 거듭하던 「론·놀」정부군이 8월15일 이후에 과연 견딜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외신에 의하면 「프놈펜」의 미국인들은 이미 거의 다 철수했고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면밀한 철수계획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또 돈푼 깨나 있는 장사꾼들과 「론·놀」정부에서 행세하던 인사들은 그 가족과 함께 3천명 가량이 빠져 나왔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적어도 이들은 「프놈펜」의 운명에 대해서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론·놀」정권이 전면적으로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산측이 필경은 월남이나 「라오스」식의 연립정부수립 정도로 일단 만족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같은 주장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의 근거에서 나왔다.
첫째, 「론·놀」의 「쿠데타」 이후에도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시켰던 소련이「시아누크」의 전면적인 승리를 달가와 할 리가 없으므로 견제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시아누크」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중공이 「시아누크」의 망명정부를 옹호해서 형세를 역전시켜 놓는 동안 「크렘린」측은 양다리 걸치기로 나온 셈이기 때문이다.
둘째, 소련뿐만 아니라 「시아누크」의 보모 격인 중공도 공산측의 전면적인 승리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짙다는 점이다.

<시아누크 태도 주목>
현재 「크메르」의 공산군세력은 「시아누크」 파·「크메르·루지」·월맹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군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월맹군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군의 전면적인 승리란 곧 월맹의 영향력증대로 연결되는데 중공은 월맹의 이와 같은 팽창을 원하지 않으며 「시아누크」역시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공산측 공세는 공산측이 흥정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겁주기 작전」으로 되어버린다. 하지만 사태의 진전자체는 이들의 「손바닥 들여다보는 듯한 선명한 점괘」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있다.
무엇보다도 협상의 주인공인 「시아누크」의 태도가 도대체 흥정에 나설 사람 같지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시아누크」는 지난 7월1일 이래 평양에 와서 휴양과 공업시찰로 소일하고 있다.
「프놈펜」시 변두리에서 부하들이 마지막 결판을 내느라고 피를 흘리고있는 마당에 이처럼 한가하게 노니는 것은 미국의 협상압력을 피하기 위한 계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론·놀」 갈수록 불리>
이를테면 「시아누크」는 주은래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곳에 옮겨 앉음으로써 미·중공화해노선을 지키려는 주의 입장도 살려주고 협상의 「채늘」도 끊어버린 셈이다. 아무리 다급하다 해도 미국이 북한측에 협상 알선을 부탁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프놈펜」교외의 전투상황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산측이 만약 「협상을 위한 전쟁」을 하고있다면 B-52에서 우박 쏟아지듯 하는 폭탄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포위망을 고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산측이 막대한 피해를 각오하고 「8·15 미군기 폭격해금」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8월 중순 「키신저」가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는 「사후협의」문제만 남겨놓으려는 의도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4∼10㎞의 포위망이란 서울로 치면 망우리 고개나 광나루쯤의 거리. 평양에 앉아 있는 「시아누크」와 「프놈펜」에서 소년병 징집에 열을 올리는 「론·놀」에게는 각기 다른 의미에서 애간장이 타는 국면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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