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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벤처로 해외로 행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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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일 아침 서울 선유도공원 선유교에서 시민들이 새해 첫 해돋이를 보고 있다. 대부분이 젊은이였다. 올해는 이들이 대학 입시와 대기업 공채의 외줄 타기에서 벗어나 꿈을 향한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새 길을 놓자. [뉴스1]

“부모 세대는 말합니다. 왜 취직을 못 하느냐고. 그 세대는 모릅니다. 우리가 스펙(각종 자격)을 쌓으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지.”

 배재은(24)씨는 지난 2년간 대기업 문을 수없이 두드렸다. 삼성·CJ·한화…. 번번이 떨어졌다. 서울대도 쉽지 않다는데 지방대 출신인 데다 그 흔한 해외 인턴 경험도 없었다. 결국 졸업을 미루고 대학 5년생이 됐다. 부모의 걱정은 스트레스가 됐다. 친구와도 소원해졌다.

 기회는 모두가 가려는 길을 벗어나면서 찾아왔다. KOTRA를 통해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여기서 기회를 잡자’고 생각을 바꿨다. 현지인의 소개로 나이키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대우도 좋았다. 월 240만원에 집도 나왔다. 대기업 문 앞에 낙담했던 그는 지금, 3800명의 직원을 관리한다. 배씨는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위원회 회의에 회사에서 만든 나이키 점퍼를 자랑스레 입고 나갔다. 그는 “발상을 바꾸고 방법을 찾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땅의 대다수 젊은이는 수능과 대기업 공채의 ‘외길’에 갇혀 좌절하고 있다.

 실력은 최고다. 25~34세 대졸 비율은 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영어 실력은 비영어권 1등, 수학은 세계 1위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행복한 20대는 절반(46.4%)이 안 됐다. 김동열 현경연 기업정책연구실장은 “20대 걱정의 절반(53.2%)은 일자리와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청년 고용률은 40.4%로 OECD 평균(50.9%)에 한참 모자란다.

 원인은 고학력에 따른 대기업 지원 쏠림, 지방 근무 기피 등에 따른 미스매치(구인·구직 불일치)다. 경기개발연구원은 미스매치에 의한 실업자를 40만 명으로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실업 손실 추정을 대입하면 장기적으로 약 30조원의 소득이 날아가고 있다. 청년단체인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이력서 한 장을 쓰는 데 필요한 스펙 비용도 1인당 4269만원에 달한다. 이렇게 해도 벽은 높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취업 4수 중인 김모(29)씨는 학점 4.3점(4.5점 만점)에 토익은 900점에 육박한다. 그는 “장남이란 부담감, 그저 그런 기업에 갈 수 없다는 압박감에 접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세준 한국은행 동향분석팀 과장은 “1996년 대학자율화 이후 대졸자가 급증하면서 ‘대학 나왔으니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도식적 사고에 모두가 갇혔다”고 말했다.

 길은 있다. 먼저 나선 젊은이들이 앞장서고 있다. 세계 최대 고급합성수지 바닥재 생산업체인 녹수에 취업한 문대영(28)씨. 그는 “친구들이 대기업·공무원 취업에 에너지를 쏟을 때 비전과 역량을 갖춘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쌓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청춘이 미래를 걸 만한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많이 키워야 하는 이유다. 마이스터고인 수도전기공고의 취업률은 94%에 이른다. 수능 점수와 대학이 아닌 꿈을 좇은 결과다. 한국 젊은이의 실력이면 해외에서도 못할 게 없다.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실에서 일하는 송모란(31)씨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 200여 곳에 지원서를 냈다. 그는 “계약이 끝나면 또 지원하면 된다. 도전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공채 개혁도 시급하다. 양세훈 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 기업은 점수로 된 스펙보다 사회 경험과 기술력 등 ‘실용 스펙’을 먼저 보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창업이나 벤처·중소기업 경력을 쌓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남민우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장은 “수능과 공채의 외길을 벗어나 필요하면 대학에 가는 관행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윤창희.손해용·정선언·김영민 기자, 뉴욕=이상렬 특파원, 파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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